조사ㆍ글 : 河島伸子 (同志社대학 경제학부 교수)
현재 프랑스의 영화진흥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Centre
Nationale de la Cinematographie) 이다. 영화영상진흥을 담당하는 조직이나 공익법인은 많이 있지만, 현재는 거의가 다양한
형식으로 CNC에서 지원을 받고 있고, CNC와의 긴밀한 연계를 근거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공적인「영화진흥제도」의 변모는 즉, CNC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CNC라고 하는 거대한 조직의 개요와 변모를 이해하는 것이 프랑스 문화정책에서 영화의 지위를 파악하기 위한 핵심이다.
다른 한편, 공적인 영화의 상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1930년대에 시작된 필름
어카이브의 선구격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활동이나, 이미 1920년대부터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네클럽에 의한 자주상영활동의 변천, 전국에
약900관, 빠리에만 40관이 넘는다는 아트 시네마의 존재, 누벨바그의 탄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카이에 뒤 시네마」나「포지티브」라고 하는 다수의
영화전문지가 지금까지도 계속 발행되고 있는 영화 저널리즘의 상황이나, 깐느를 필두로 전국각지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영화제 등, 다루어야 할 사항은
무수히 많으며, 이러한 활동을 담당해온 사람들이나 이런 활동을 둘러싼 에피소드, 사건, 전설 등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것들은 물론
CNC의 역사나 변천에도 많은 관계가 있다.
매우 중앙집권적, 일원지배적인 프랑스의 영화진흥제도이지만, 그 배경에는 다양한
논의가 있고, 다채롭고 풍부한 프랑스 영화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의 영화진흥제도, 프랑스 국립영화센터에 의해 구축된 영화진흥을 위한 시스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몇번인가 조사가 이루어졌다. 다음 CNC의 역사와 그 활동에 대한 기술도 그것들과 중복하는 부분이 많지만, 영국이나 독일,
일본의 상황과 비교하기 위한 ㅣ본적인 자료로써, 여기서 CNC의 개요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 CNC의 기원과 역사
1946년 10월 25일 CNC설립 영화진흥을 담당하는 조직이나 제도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이다.
세계영화시장에서 프랑스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저하되고, 영화산업은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해져,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제작비
부족, 비용 증가, 영화산업의 재정적약화, 외국영화의 진출 등이 그 원인으로 분석되었고, 이에 대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종전직후,
업계, 지식인 그룹에 의해 이 문제가 다시 한번 논의되었고, 영화진흥정책을 담당하는 조직의 설립이 급선무라는 의견으로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CNC의설립이 결정되었다. 1946년 10월 25일의 법안에 의해, CNC는 행정자격, 법인격으로 재정자치권을 가지는 공적기관으로서 산업성 관할하에
설립되었다.
먼저, CNC가 한 일은 제작자금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이다.
1947년, 정부는 영화의 활용에 따하 얻을 수 있는 수입을 재원으로 투입할 것을 정하고, 1948년 9월 23일의 법령에서 영화산업에 대한 조성제도의
재정기반을 확립하는 기구를 설립. 이렇게 하여, 현재에 이르는 영화공개설(TSA)을 영화제작을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에 대한 자동적인 지원을 충족시키는
시스템이 확립된 것이다.
CNC는 영화산업을 진흥하는 조직으로서 설립되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영화를 예술의
1장르로 보는 견해가 이 시기에는 이미 정착되었다. 1920년대는 프라스 전위영화의 걸작이 다수 만들어져, 이들 영화를 상영하는 아트 시네마도
존재하고, 고전영화나 전위영화 등을 회원용으로 상영하는 시네마클럽도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도키의 등장으로 인해 무성영화가 상영되지
않게 되어, 이들 필름의 보존이라는 문제도 떠오르게 되었다. 앙리 랭그로와에 의해 시네마 테크 프랑세즈가 설립된 것은 1935년으로 1938년에는
국제 필름 어카이브연맹(FIAF)가 설립되었다.
결국, CNC는 산업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영화에 대해서는
산업임에 동시에 문화라는 것이 당연히 양립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어서, 영화를 진흥하는 것은 스스로 다양한 문화ㆍ예술을 진흥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CNC는 설립직후부터 시네마 테크 프랑세즈의 활동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1946년에는 제1회 깐느영화제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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