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가바야마 고이치(도쿄대학 명예교수, 일본 인쇄박물관 관장)

 

문화 교류가 가져온 이해
▲ 1888년 발행의『여학잡지』제100호에 게재된「이상한 신 의상」. 후에「황제의 신 의상」이「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의역되어 현재는 보통명사와 같이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유럽과 일본과의 문화 교류는, 근대에 대해 말하자면 문명개화로부터 시작되는 노도와 같은 정보와 지식의 유입에 의해서 진행되어 왔다. 사회 근대화의 요청에 따른 다양한 문화가치의 학습이 일본문화에 변용을 요구해 왔다.
정치나 경제의 일반 가치의 실현, 즉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의 수용이나 확립은 분명히 유럽문화의 핵심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기초로 해서만 가능했다. 서구 근대의 합리적 자연이해의 방식을 배워 익힘으로써, 과학ㆍ학술도 생산기술도 자기의 것으로 이룰 수 있었다. 무엇보다 친숙치 않은 강렬한 일신교에 대해서조차도 소수의 기독교도에 한하지 않고 종교의 진수에 관계되는 객관적인 탐구로써 한다면 그 나름대로의 이해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을 획득했다. 이렇게 해서 유럽과 일본과의 문화교류는 이쪽의 입장에서 보면 명확한 수입초과이지만 실질상의 성과를 이루었다.
이윽고 이와 같은 일을 반성하자는 의식에서 일본문화의 고유 형태를 해외에 발신해야 한다는 선의의 발의에 따라, 우선은 문학이나 예술ㆍ예능의 비법을 직접 소개하려고 했다. 일본 고전문학의 번역이나 가부키, 분라쿠의 공연, 불상이나 일본화의 전시 등 다양한 시도가 행해졌다. 그것들은 수입된 문화 양식과는 완전히 다른 일본의 독자적인 달성 성과이며 유럽에 있어서도 현저한 반응을 받아들여 문화교류에 다대한 성과를 가져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라시아 대륙의 양단에 있고 독특한 진화를 이루어 온 두 문화가 서로 그 틀을 표시하고 자극을 교환하는 것은 양자에 있어서도 매우 의의가 있음이 착실하게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판타지 문학의 충격
그런데 이러한 문화교류의 조류 속에서 도대체 안데르센 동화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 분명히 메이지 이후의 번역자들은 그것을 유럽 아동문학의 최고봉으로 소개하는 데에 힘쓴 것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나 괴테, 혹은 단테나 호메로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양문학의 일환으로서.
그러나 안데르센의 독자들은 소년ㆍ소녀이든 그 부모님이든 그 문학이 가지는 서구적 가치의 진수에 접근하려고 하는 의도를 대부분 갖지 않았다. 독자들은 저쪽 문화의 추적이라는 필사의 학습의욕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이와 어른이 자신들의 몸 속에 지닌 상상이나 공상의 힘을 빌려 일상의 생활의 저편에 전개되어야 할 풍경을 자력으로 재현해 보려고 했다. 그것은 실은 전부터 일본에 있어서도 민화나 옛날이야기 속에서 만나 온 정경의 재전개인 것 같이 생각된 것임에 틀림없다.
기껏해야 아동문학이라고 깔보고 싶어 하는 기분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21세기를 맞이해서 서구와 일본 사이의 문화교류를 관찰해 보면 안데르센이 가져온 문제권(問題圈)의 크기가 새삼 실감되는 듯 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시간이 지나 안데르센의 현대버전이라고 해도 좋은 이른바 판타지 문학의 충격이 더욱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르킨의『반지 이야기』나 C. S. 루이스의『나니아 연대기』는 모두 영화화된 작품을 포함하여 지금 가장 평가 높은 유럽문학으로서 받아들여진다.『해리포터』의 연작이나 혹은 이미 고전이 된『어린 왕자』도 그 호칭에 이론은 있겠지만 판타지로 수용되고 있다.

 

일상에서 맛 보는 문화교류의 감동
그것 뿐만이 아니다. 언어의 울타리란 제약이 있기 때문일까, 일본으로부터 반출되는 판타지 작품의 텍스트는 소수라고 하지만, 그 그림ㆍ영상화 작품 쪽은 지금에 와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문화로서 향수되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로서이다. 데츠카 오사무, 오토모 가츠히로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에 이르는 일본발 애니메이션은 판타지라고 하는 상상세계를 쌓아 올려서 그 영상의 조형력에 의해 유럽인들의 마음속을 계속 뒤흔든다. 물론 아이도 어른도.

때마침 작년 국제교류기금상이 미야자키 하야오씨에게 주어졌다. 이 경사는 뜻밖에도 앞으로의 일본과 유럽 문화교류의 방향을 예고하고 있는 듯 하다. 판타지와 애니메이션이 환기시키는 문화적 창조력은 바야흐로 나라와 그 언어 사이의 울타리를 확실히 제거하기 시작했다.
물론 판타지만이 아니다. 지금 유럽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전통예술ㆍ예능의 여러 가지, 예를 들면 일본식 북이나 꽃꽂이, 혹은 무용에서부터 전통무술에 이르는 표현활동이 거기에 견줄 만한 것일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유럽과 일본의 문화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마음속을 한결같이 동요시킨다. 그 흥분과 희망을 어떤 발돋움도 없이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안데르센을 일본어로 읽기 시작한 사람들의 시대로부터 1세기 남짓, 간신히 문화교류에는「벌거벗은 임금님」의 의상이 아닌 극히 평범한 일상의 의상을 걸치고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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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바야마 고이치

도쿄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후 교토대학 인문과학 연구소 조수. 도쿄대학 문학부 조교수, 교수를 거치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서양미술관장. 2005년 10월부터 인쇄박물관 관장. 전공은 서양 중세사, 서양 문화사. 현재「2005년 일EU 시민교류의 해」실행위원회 부위원장,『遠近』편집 위원

 

遠近(wochi kochi) 제8호(Dec.'05 / Jan. '06)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