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물결, 지난 10년
글 : Fabrice Arduini(일본국제교류기금 파리일본문화회관 사업부 영화담당)
6만명이 모인 재팬 엑스포
2006년 현재 프랑스에서 10대와 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의미로의 현대 일본문화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그 침투 정도는 2개의 숫자가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7년 전부터 매년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재팬 엑스포의 입장객 수. 그리고 개봉할 때마다 착실하게 늘어가는 미아자키 하야오(宮崎駿) 작품의 관객동원 수가 그것이다.
올해 7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개최된 제7회 재팬 엑스포에 6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발길을 옮긴 것은 기억에 새롭다. 작년보다 2만 명 이상이 더 늘었다며 기뻐하는 주최자. 재팬 엑스포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일본의 서브컬쳐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견본 시장과 문화 이벤트가 반반인 민간기획이다.
이제는 연간 매상의 3할 이상을 일본 만화에 의지하고 있는 출판사의 각 부스와, 연령과 성별에 따른 젊은이들 각 층을 타겟으로 한 각양각색의 애니메이션을 발표하는 영화배급사의 부스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 그 중 유달리 눈길을 끄는 것은 동인지 코너이다. 이는 엑스포에서 프랑스인 만화가와 일본에서 초대된 만화가의 떠들썩한 교류 장소인 것이다.
「아니메(:애니메이션)」「재패니메이션(:일본애니메이션)」「도진시(:동인지)」「오타쿠(:매니아)」「팬서브(:자막을 넣은 일본 애니메이션)」「쇼넨망가(:소년만화)」「쇼죠망가(:소녀만화)」「코스프레」「헨따이(:변태)」등은 장내를 방문한 젊은이들의 공통어이다.
어느 부스에는『현시연(げんしけん)』의 DVD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유머가 넘치는 기법에 대학생 오타쿠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린 현시연의 애니메이션판(기오 시모쿠(木尾士目) 원작)이다.「만일 당신이 코스프레, 오타쿠라는 단어를 알지 못한다면 절대 이 DVD를 사지 말아 주세요!」라는 식의 눈에 띄는 재킷의 선전문구는 도발적이다.
일본 만화의 번역대국 프랑스
개최 다음 날 각 신문사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동 엑스포의 성공을 크게 다루었는데 다음에 예로 든 대담한 분석도 그 중 하나이다.
「일본의 서브컬쳐인 만화는 프랑스에서 이미 하나의 사회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60년대에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영국ㆍ미국발 로큰롤과 다르지 않은 기세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기술대국으로서 이름을 떨치는데 그 중 하나로 ‘번역대국’이라는 일면이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일본만화의 번역대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벤트에 자주 다니는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정도가 심한 오타쿠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실은 근 2, 3년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이 아이를 동반한 부모의 수이다. 그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영화의 성공에 있다. 2000년부터 프랑스에서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장편영화의 관객동원수는 다음과 같다.
『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40만명
『원령공주(もののけ姫)』50만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150만명
재팬 엑스포의 관람자수는 일본의 서브컬쳐를 평가하는 프랑스인층이 한정된 팬들에 머물지 않고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것은 미야자키 감독 장편 애니메이션의 상업적 성공이 예술성에 대한 평가도 획득했다는 점에 기인한 것이 가장 크다.
일본의 예술적인 장편 애니메이션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프랑스에서 수용된 것인지 그 10년 즈음의 역사에 대하여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언급해 보려 한다.
센다이 유학시절에 본 미야자키 애니메이션
1992년, 일본에서 유학한지 1년 정도 지난 여름의 일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굳이 볼 일이 없었던 필자지만, 그 해 여름 일본에서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붉은 돼지(紅の豚)』예고편에 끌려 별 생각없이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결과 뇌리에 박힌 듯한 신선한 영상을 반추해가며 귀가를 하게 되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즐겁게 볼 수 있는 로맨스 넘치는 이야기 진행, 디즈니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선악이 뒤얽힌 교묘한 연출. 보기 편하게 느릿하게 움직이는 뛰어난 영상.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청량감. 고독한 인생을 보낸 주인공의 쓸쓸함이 아련하지만 서서히 마음에 와 닿는다.
감독의 이름조차 몰랐던 필자였지만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이 알고 싶어져 히트 작품 비디오를 입수했다. 애니메이션으로써 본래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진지한 주제에 도전한『바람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 일본만이 가능한 판타지로 충만한『이웃집 토토로』이렇게 2편이었다. 감상하면서 몸 속에서 솟아 나오던 것은「이렇게까지 매력적인 애니메이션이 왜 프랑스에 소개되지 않는 것일까」라는 소박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영화제 관계자도 아니고 영화배급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닌 필자였기에 일반 관객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 프랑스에서 발매되고 있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소개 전문지들 |
아키라(AKIRA)의 일격
지금 생각해보니 필자의 소박한 의문과 때를 같이하여 프랑스 영화업계에서는 영화 평론가나 영화제 관계자가 영화전문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각 영화배급사에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요청작업을 후원하고 있던 것이 전년에 공개된 오토모 가츠히로(大友克洋) 감독 작품의 애니메이션『아키라(AKIRA)』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80년대 후반부터 이미 프랑스와 벨기에 만화업계에서 예술가로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던 만화가 오토모 가츠히로는 자신이 직접 영화화한 작품『아키라』의 참신한 수법을 통해 애니메이션 영화는 예술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매체라고 선언, 세계의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으로 말하자면, 예를 들어『UFO 로보 그렌다이저(UFOロボ・グレンダイザー)』『캔디 캔디(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세일러문(セーラームーン)』『포켓몬스터(ポケットモンスター)』로 대표되는 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질리지도 않고 텔레비전에서 대량으로 계속해서 방영해 온 일본제 TV시리즈 정도였다. 이들 TV애니메이션은 히트는 쳤지만 어린이 혹은 기껏해야 청소년 대상에 지나지 않았고 저예산이었기 때문에 그림도 단순하게 제작되었다. 어디까지나 TV물로 사람들이 영상적 혹은 예술적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한 인식을 깬 것이 바로『아키라』의 등장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아키라』로 대표되는, 작가성이 강하고 어른이 감상할 수 있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탄생시킨 대국이라는 것을 겨우 그리고 처음으로 프랑스인들에게 알린 것을 의미했다.
높은 평가를 받은『붉은 돼지』
이 후의 전개는 빨랐다. 93년 아누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붉은 돼지』가 출품 결정, 장편영화대상 수상. 한편 출판업계에서도『드래곤볼』발매 결정, 2년 이내에 각 권 10만부 돌파. 동 작품의 TV판 대히트.『드래곤볼』의 상업적 성공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장사가 된다’라는 소문을 프랑스 영화업계에 정착시킨 일이 되었다.
필자가 일본의 영화관에서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붉은 돼지』가 드디어 프랑스 배급 결정. 결과는 6만명을 조금 넘는 관객동원수. 자국 일본에서 획득한 300만명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특필할 만한 것은 프랑스 교육성과 문화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더빙 판에서 주인공 포르코 롯소의 목소리를 담당한 인기배우 장 르노는 미야자키 감독을 열광적으로 칭찬했다.
또한 그 때까지 TV애니메이션을 보는 어린이들의 부모가, 예를 들어『북두의권』『시티헌터』를「너무 단순하다. 폭력적이며 보는 아이들에게 적절하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애매한 표현」이라는 비판 내용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강한 반감이 이미 상식으로 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붉은 돼지』는 그들의 편견이라고 해야 할 강한 반감을 훌륭하게 깨어보인 것이다.
이리하여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편견을 씻어내는 것에 성공, 상업적으로도 배급회사에서 끈질기게 보여지던 당초의 당황함을 확고한 신뢰로 강력하게 바꿔버린 것이다.
95년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만화와 함께 눈부신 성장을 보여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인데, 이러한 성공담을 탄생시킨 감독의 이름을 들자면 미야자키 하야오, 오토모 가츠히로,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勳), 곤 사토시(今敏), 오시이 마모루(押井守)가 그 대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50년을 거슬러 올라가다
최근 5년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광적인 관심에 프랑스 영화 관계자들은 모두,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일본에는 예술적 애니메이션이 아직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라며 열심이다. 각 배급회사는 양질의 애니메이션이라면 어쨌든 팔릴 것이다 라는 전망으로『밀림의 왕자 레오(극장판)』(원작:데쓰카 오사무)『불새2772 사랑의 코스모존』(감독:데쓰카 오사무, 스기야마 다카시)『태양의 왕자 홀스의 대모험』(감독:다카하타 이사오)『쟈린코 치에』(감독:다카하타 이사오, 원작:하루키 에츠미) 등 그 외에도 예전에 프랑스에서 히트친 TV시리즈의 대부분을 DVD로 발매하고있는 상태다.
도에이 동화(東映動画)의 첫 작품 『백사전 白蛇伝』(1958년 제작)처럼 50년대 후반 작품에 이르기까지 영화관과 DVD판으로 벌써 배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적어도 최근 50년간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명작 중에 프랑스에 현재 소개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감에서 나오는 자극
▲ 파리문화회관에서 개최한「일본 애니메이션의 원류 1920년부터 1950년까지」의 카달로그와, 'JAPAN ANIMATION' 최근호에서도 이 특집에 대해 소개기사가 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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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리스 아르뒤니
파리국립동양언어문화학원(INALCO) 졸업. 1991~93년 일본정부(문부성) 국비유학생으로 도호쿠대학대학원 문학부 국문학연구실에 재학. 그 후 96년까지 도쿄의 일불(日仏)합병기업에서 근무. 97년에 일불관민협력(日仏官民協力)에서 개설된 파리일본문화회관에서 개관 당시부터 영화담당 직원으로 근무.
遠近(wochi kochi) 제13호(Oct./Nov. 2006)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