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정우(만화칼럼니스트, 만화기획사 코믹팝 엔터테인먼트 대표)

 

'일본문화개방정책' 이전부터 시작된 한일 문화 교류
최근 일본에서 '한류'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에서 큰 뉴스가 되었으니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드라마를 중심으로 음악이나 영화 등의 한국 문화가 일본에서 붐을 일으켰다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그럼 반대로 한국에서 일본 문화는 어떻게 보여져왔을까.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가 1998년 이후 4차에 걸쳐 실시한 '일본문화개방정책'이라는 단어의 임팩트가 커서, 그 이전까지의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가 완벽하게 금지되어 모든 한국인이 전혀 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기본적으로 금지되었던 점은 사실이고, 그로 인하여 일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일본 문화를 쉽게 접하기 힘들게 되어 있었다는 점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을 '일본문화개방'이라는 단어로 쉽게 뭉뚱그려버리는 것에는 일면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나마 현재의 한국 내에서는 아무리 '일본문화개방'이라고 표현하더라도, 그 이전까지 한국 내에 모든 일본문화가 전혀, 완벽하게 하나도 들어올 수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런 한국의 과거 사정을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 하나를 쓰더라도 조심성이 필요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문화개방정책'이란 그때까지 개방되지 않고 있던 분야의 일본 문화에 대한 개방 정책인 것이다. 분명히 1998년 이전에도 자유로이 유입되고 있던 일본 문화의 사례도 적지 않게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통 문화나 일반적인 예술 작품의 경우에는 일본 것이라고 무조건 유입이 불가능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더불어 대중음악에서도 일본 가수가 영어로 취입한 세계 진출 음반 같은 경우에는 1998년 이전에도 몇 번이나 국내에서 발매된 바가 있다. 출판 분야에서도 1998년 이전에 소설을 비롯한 각종 일본 서적이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에게 읽혀왔다. 출판 만화 분야에서도 일본 만화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베스트셀러를 낳은 바 있다. 특히 이 원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일본 문화의 많은 분야 중에서도 극히 초기에 정책적인 교류로서 수입되기 시작했고 그 이후 한국 문화에도 다대한 영향을 미친 바 있는 분야, 즉 애니메이션이다. 그 중에서도 TV애니메이션에 조명을 맞추고 싶다.

 

한일 합작으로 추진된 애니메이션 사업
한국의 TV는 1960년대 말부터 실로 40년 가까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왔다. 그 계기는 1960년대 말에 방영되었던『황금박쥐』와 『요괴인간』이다. 이 두 작품은 일본의 광고회사 제일기획(다이이치기획, 1999년 아사히통신사와 합병된 후 현재는 '아사츠 디케이')과 한국 최초의 민영 방송국이었던 동양방송(1980년의 언론통폐합 이후 한국방송공사(KBS)에 통합됨)이 합작으로 제작했던 TV애니메이션이다.
양사는 합작을 앞두고 1965년 공동출자로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덕션을 한국에 설립했고, 작화감독인 모리카와 노부히데씨를 필두로 일본인 스태프를 서울에 파견하여 한국의 신인 애니메이터를 모집·육성하면서 이들 작품을 제작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1950년대에 이미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었지만, 대다수가 극장용이거나 CF의 형태였기에 본격적인 장편 TV애니메이션의 제작 경험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본래 이 동양방송이 신문사인 중앙일보의 계열사로서 (초기 명칭도 '중앙방송'이었음), 당시 사장을 맡고 있던 홍진기씨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이루어진 제 1차∼제 3차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의 한국측 대표 인사였다는 점이다. 국교정상화 교섭 이후 홍진기씨는 정부에서 법무부, 내무부 장관 등을 거쳐,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된 1965년에 동양방송 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동양방송에 파견되었던 모리카와 노부히데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한일 간의 애니메이션 합작 사업에는 일본 측에서도 당초 정부 인사의 의뢰를 통해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측에서도 한일기본조약의 기틀을 다지고 정부의 고관을 역임한 홍진기씨가, 직접 『황금박쥐』와 『요괴인간』을 만들기 위한 애니메이션 제작 사업 현장을 방문하는 등 크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아직 그와 관련된 연구가 많이 진척된 것은 아니라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2001년부터 모리카와씨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조사해온 필자의 추측으로는 아마도『황금박쥐』『요괴인간』의 한일 합작 사업은 한일기본조약의 체결과 관련하여 한일 문화 교류 정책의 일환으로서 양국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그 문화 교류 정책은 그 후, 한일 양국의 정치적인 입장이 변화함에 따라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게 된 듯 하다. 일본 측도 한국 측도 점점 소극적이 되었고, 일본인 스태프들도 전원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합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대신 일본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의 동화 파트만을 한국에 맡기는, 소위 '하청'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본래 한일 양국이 협력하여 세계 시장을 노리자는 커다란 프로젝트였던 것이, 결국은 당시 한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통해 애니메이션 제작 예산을 낮게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일 문화 교류가 낳은 결과
그러나 이 합작 프로젝트 덕분에, 이후 한국 TV에서의 일본 애니메이션 방영은 1960년대 말부터는 거의 자유롭게 되었다. 하청이라고는 하나 일단 '한일 합작'이라는 명분을 내걸 수 있었기 때문인데, 어쨌거나 그로 인하여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에 의하여, 똑같은 작품이라도 한일 간에 받아들이는 태도나 인기의 정도가 다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캔디 캔디』(『들장미소녀 캔디』),『은하철도 999』,『미래소년 코난』부터 손꼽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들 작품은 일본에서도 물론 인기작들이긴 했지만 한국에서와 동일한 정도의 인기였는지는 조금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있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역사를 논할 때 이 세 작품보다 더 우선적으로 손꼽히는 작품이 많이 존재하고, 그 작품들이 한국에서는 방영되지 않거나 방영되었더라도 인기가 덜했던 경우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아무튼 한국에서 히트한 이들 일본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그 작품을 보고 자라 영향을 받은 세대를 만들었고, 거기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새로운 창작 세계를 구축해낸 경우가 다수 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류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겨울 연가』의 경우에, 각본을 맡았던 김은희, 윤은경 두 작가는 어린 시절 봤던 『캔디 캔디』애니메이션에서 "멜로드라마의 원형을 봤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잡지「주간 신쵸」2004년 8월 12·19일자) 간단히 뭉뚱그려 말한다면 옛날 일본의 TV애니메이션이 한국의 드라마에 영향을 줬고, 지금에 와서 그 한국 드라마들이 일본에 유입되어 한류 붐을 일으켰다고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그 과거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초기의 미국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컸다고도 일컬어진다. 미국 애니메이션은 또 그 이전의 다른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비단 일본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라 미국 팝문화의 영향도 컸다. 앞으로는『겨울 연가』를 비롯한 한류 드라마나 영화들이 앞으로의 일본 문화에 무언가 영향을 주는 일도 있을 것이며, 그 시초는 이미 현재의 일본에서 조금씩 보여지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문화의 교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 양국 간에는 정치적 관계로 인한 벽이 문화의 교류보다 더욱 크게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거기에는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화가 보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와 같이 『황금박쥐』나『요괴인간』, 혹은『캔디 캔디』와 『겨울 연가』 등과 같은 개별 작품을 통한 문화 교류가 길고도 완만하게, 그러나 확실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장애 요소가 있더라도 문화의 흐름을 완전히 막아버리기는 어려운 법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문화 교류가 끊기지 않고 계속될 수 있도록 모든 일들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원문은 일본어, 遠近(wochi kochi) 제13호(Oct./Nov. 2006)에서 전재한 문장을 필자가 직접 번역 및 수정하여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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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우

만화칼럼리스트, 만화기획사 대표.

1995년부터 한국에서 일본의 만화ㆍ애니메이션의 사정을 소개. 

2002년부터는 일본에서도 '요미우리'신문 등에서 한국의 서브컬쳐 컬럼을 일본어로 발표하고 있음.

 

遠近(wochi kochi) 제13호(Oct./Nov. 2006)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