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차세대 리더포럼 2006
글 : 백상현(모건스탠리 Global Capital Market부 상무)
제4차 한중일 차세대 지도자 포럼이 막을 내린지 벌써 2개월여가 지났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왜 우린 서로 얼싸안고 밤늦게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왜 우리는 열 하루 동안 지속된 이 행사기간 내내 그토록 열띤 토론과 논쟁을 벌였던 것일까?
포럼에 추천되었다는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 난 과연 내가 이 행사의 명칭이 말해주는 "차세대 지도자"에 어울리기나 할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한중일의 정치, 사회, 경제, 외교 그리고 이 지역의 미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행사가 시작되자 마자 이것은 한낮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와 그리고 한국, 일본, 중국에서 온 16명의 참석자들 모두 가진 것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순수한 열정" 하나 뿐이었고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한중일 차세대 지도자 포럼은 2002년 한중일 3국 "국민교류의 해"를 맞이하여 동북아시아 주요 3국인 한중일의 정부, 국회, 재계, 언론, 학계의 소장인사들간에 미래 지향적 대화체를 구성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어 올해 4회째에 이른다. 참가자들은 한중일 3국을 순회하며 회의, 강연, 주요인사 예방 등의 일정을 공유하고 역내 문제 및 3국 공동 관심사에 대한 진지한 의견 교환을 하며, 이를 통해 상호 이해를 확대하고 우정과 교류를 증진하자는 것이다.
올해 행사는 7월 9일부터 19일까지 일본 센다이, 한국의 서울과 제주, 중국의 칭따오를 거치며 10박 11일동안 개최되었다. 행사첫날 센다이의 몬터레이 호텔에 참석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 때만 해도 난 이 행사가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평생 다른 나라에서 다른 분야에 일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과연 공통의 화제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그것도 열흘 남짓 동안이나 말이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은 한중일 3국간에 역사와 영토문제 등으로 갈등이 커져만 간 시기 아니던가.
하지만 공교롭게도 포럼 시작 직전 발생한 "북한 미사일 발사"소식은 우리를 지역 내 안보문제와 이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일부 일본 참석자들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응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한국 참석자들은 북한이 그러한 행동을 보이는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안보보장, 경제지원 등 보다 장기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중국측 참석자는 미국의 동북아지역 개입과 북한에 대한 위협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라는 한 사건을 놓고도 참석자들은 양보없는 논쟁을 벌였고 이 가운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인정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반복되었다.
우리는 동북아 3국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정치,외교,경제,역사,사회문제의 순으로 토의를 진행했다. 견해 차이가 가장 적었던 주제는 역시 경제분야였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FTA)을 중심으로 진행된 3국간 경제협력 방안에 관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동북아지역의 상호 경제의존도가 이미 높은 수준에 와 있고 이는 향후 어떤 식으로든 강화된 형태의 경제협력체로 발전될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3국간 경제발전 정도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협상자세를 가져야 한다는데 서로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정치, 외교 그리고 역사와 영토문제에 관해서는 참석자간에 한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이 펼쳐졌다. 특히 일본을 한 편으로 하고 한국과 중국을 다른 편으로 하는 대결구도가 자주 펼쳐졌다. 그 이유는 20세기 초중반 동아시아에 발생한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일본 참석자들은 젊은 전후 세대라서 그런지 과거사에 대한 부채의식이 매우 적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일본의 침략전쟁 그 자체는 물론 그 과정에서 저질러진 과오는 그 당시 식민주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종전 후 전범재판이나 그 이후 전후 처리과정은 패전에 따른 억울한 결과라는 생각을 갖는 참석자도 있었다. 나를 비롯한 한국 참석자들과 중국측 참석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강한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참석자들끼리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격렬한 논쟁을 벌여도 서로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일본의 한 참석자와 여러 주제에 대해 자주 대립각을 폈는데 그럴수록 더욱 그에 대한 친근감이 들었고 그도 나에 대해 호의를 표하게 되었다. 사실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핑계로 상대방을 부정해서가 아닐까 싶다.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대국의 입장을 경청하고 그 편에 서서 최대한 이해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한 국가간의 갈등이 악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한중일 3국은 과연 평화와 공존의 지역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많은 의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포럼이 끝날 무렵 우리는 동북아의 미래를 보다 낙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먼저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한 합의를 잊지 않았다. 그것은 3개국 상호간의 자제, 겸양, 존중, 인내 그리고 반성과 용서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상대국에게서 장점은 최대한 배우고 자기 나라의 부족한 점은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었다. 각국은 지역 헤게모니의 추구보다는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평화 유지에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언론과 매스 미디어는 지역 문제에 대한 선정적 보도를 최대한 자제하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영화, 음악, 문학 등 문화 교류를 활성화하여 상대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일본 참석자들 모두에게서 자국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자긍심이 상대국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국과 상대국민이 어떻게 보거나 나는 내 갈 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을 한중일 3개국 각각이 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한 모든 것은 상대국의 잘못이고 나는 피해자일 뿐이다라고 3개국 모두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은 비단 개인간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듯 하다. 한중일 간의 인식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가가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다행이 우리에겐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욱 많다. 포럼에서의 토론 첫날 신상발언 시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미국 MBA 과정 입학 후 가장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 동료들은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외모상의 유사점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우리를 가깝게 이어줄 끈은 너무도 많다. 가라오케와 노래문화만 해도 그렇다.
사실 평생 한 번 본적도 없는 3개국의 포럼 참석자들을 한 순간에 친구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가라오케였다. 행사 첫날, 우리는 첫 소개와 저녁식사 후 자연스럽게 노래방으로 모여들었고 그 후 우리의 서먹서먹함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가라오케의 문화는 박수와 칭찬과 열린 마음과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적극적인 자세다. 행사기간 동안 우리는 네번 이상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자리를 가졌고 이를 통해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었다.
우리 4차 포럼의 주제가가 되어 매번 불려진 노래가 있다.
비틀즈의 "Let it be"다.
행사 첫날 일본의 시바야마 의원이 불러 그 후 가라오케에 갈 때마다 모든 참석자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마무리 곡으로 불렀다. 노래는 "내 자신이 너무 힘들어 질 때, 성모 마리아님이 내게 다가와 지혜의 말씀을 합니다. 그냥 그대로 두라고"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참석자들은 기성세대가 한중일 문제의 해법을 지금 당장 못 찾겠거든, 싸우지 말고 일단 그냥 내 버려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젊은 세대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미래를 만들 더 나은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선율이 흐른다. 우리는 미래를 꿈꾼다.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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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MBA 취득.
재정경제부 세제실 행정사무관, 국제금융국 행정사무관, 골드만삭스(홍콩) 주식파생상품부 이사를 거쳐 현직.
遠近(wochi kochi) 제14호(Dec.'06/Jan.'07)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