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위화(작가)

 

중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위화(余華) 씨가 본 기금의 문화인 단기초빙 프로그램을 통해 2006년 8월 18일부터 9월 1일까지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귀국 후, 일본 체재시의 인상을 보내 주었다. (편집부)

 

작년 8월, 저는 가족과 함께 15일간 일본에 체재하며 도쿄, 도쿄에서 가까운 가마쿠라(鎌倉), 그리고 홋카이도(北海道)의 삿포로(札幌), 오타루(小樽), 조잔케이(定山渓), 관서(関西)지방에서는 교토(京都), 나라(奈良), 오사카(大阪)를 방문하였습니다.
실로 훌륭한 여행이었습니다. 이십 수년 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저는 그 서술의 섬세함에 깊이 빠져들었었습니다. 그 이후, 다른 일본 작가의 작품에서도 동일한 섬세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문학작품에는 세부 묘사에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풍부한 색채와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있습니다. 일본문학 특유의 기질이겠지요.
이번에 드디어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일본문학이 이러한 섬세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했으며, 이 정도까지 섬세하고 풍부하구나 라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디테일에 대한 심혈을 기울인 애정이야 말로 일본인이라는 민족 특유의 기질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일본은 아름다운 디테일로 가득한 나라이며, 제 자신의 일본 여행도 바로 아름다운 디테일로 가득한 여행이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묘를 방문하다

도쿄ㆍ진보쵸(神田神保町)의 헌책방 거리를 걷다.

가마쿠라에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묘를 찾아갔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영원한 잠에 빠져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매우 커다란 묘원이었습니다.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조용한 통로를 따라 빙글빙글 산을 올라 묘원의 가장 높은 곳에 어렵게 도달하였습니다. 가와바타가(家)의 묘 앞에 섰을 때 저는 은밀한 디테일에 주목하였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묘비의 옆에 석재로 만들어진 명함을 넣기 위한 상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돌아가신 분을 방문할 때 명함 한 장을 손수 건네기 위함일까요. 이러한 아름다운 디테일에 의해 생(生)과 사(死)는 순식간에 친밀한 것이 됩니다. 어쩌면 명함 상자의 존재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교류를 계속하기 위한 리얼한 근거라고 해야겠지요.
맑은 하늘 아래 주위를 바라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무수의 묘비가 죽 늘어서 있습니다. 그 순간 묘원은 흡사 광장이 되고, 우뚝 솟아있는 묘비가 살아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이제는 완성된 각각의 인생이 소리도 없이 말을 걸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저와 그들의 생활은 실제로는 같은 공간에 있으며 단지 다른 시간을 지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교토의 밤
교토의 밤도 실로 잊기 어렵습니다. 밤이 된 고다이지(高台寺)를 집사인 데라마에 조인(寺前浄因)씨가 안내해 주었습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과 정원이 하이테크 라이트에 의해 빛나는 절입니다. 거울과 같이 아주 조용해진 연못 옆에서 우리들은 긴 시간 멈추어 서 있었습니다. 또 가레산스이(枯山水)에 비치는 영상이 어지럽게 바뀌는 모습을 봤을 때는, 소름 끼칠 정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나무 숲 앞에서 바라본 것은 흔들리는 대나무 위를 경쾌하게 흩날리는 CG입니다. 도깨비 춤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이 무서움을 흩뿌릴 때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 숨조차 쉴 수 없게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 하나씩 절 사이를 조용히 걸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고도(古都)』에도 그려져 있는 것 같은 커다란 도리이(鳥居)를 지나면 이윽고 와글와글 떠들썩한 교토의 밤 세상이 보였습니다. 우리들 옆에 있는 도리이는 마치 조용한 사원의 세계와 떠들썩한 세속 세계의 분수령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사원의 조용한 세계에 서서, 대로 저 편의 끊이지 않는 사람과 강의 흐름, 네온사인의 반짝임, 웅성대는 소리와 음식 냄새가 감도는 것을 천상에서 인간을 내려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데라마에 집사가 관광객에게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이시베코지(石塀小路)에 데려가 주었습니다. 교토 사람들의 생활의 정수 속을 걸었습니다. 이시베코지는 아주 조용하며, 다른 사람들은 없고 오직 우리들 뿐이었습니다. 목소리를 낮추고 양쪽으로 늘어선 가옥의 정교한 아름다움의 변화, 문이나 창의 변화, 입구 앞에 걸려진 제등의 변화를 즐겼습니다. 안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빛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세심하게 치장한 한채 한채의 집이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세 살 아들이 감개무량하여 중얼거렸습니다.「여기는 인간세계가 아니야. 천국이야.」

 

삿포로 스스키노(すすきの) 주점에서

도쿄ㆍ신주쿠에서

이 짧은 문장을 끝내려 했을 때 문득 삿포로의 밤이 떠올랐습니다. 홋카이도 대학의 노자와 도시타카(野澤俊敬) 교수가 친구와 함께「신주쿠(新宿)에서 북쪽으로 가장 떠들썩한 장소」에 데려가 주었던 때입니다. 그곳은 삿포로의 주점가로 5,000여 개의 가게가 모여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10평방 미터 정도의 주점이었습니다.
일흔에 가까운 노부인이 안에 서 있는 카운터에 죽 늘어서 앉은 우리는 마시고, 떠들고, 노래하며 웃었습니다. 이「이로리(囲炉裡)」라는 가게의 여주인은 젊었을 적「제1회 미스 스스키노」에 뽑힌 적이 있어, 미스 콘테스트 당시의 사진이 벽에 잔뜩 붙어 있었습니다. 사진 속 젊고 아름다운「미스 스스키노」를 바라보다가 이미 늙어버린 눈 앞의 노부인을 보니, 둘이 동일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벽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 수상이 그녀에게 보낸 문장이 걸려 있습니다. 내가 나카소네 씨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가며 전 수상에 대해「그 아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어 그녀는 종이와 펜을 꺼내 나에게도 나카소네 씨처럼 한마디를 부탁했습니다. 눈 앞의 노부인을 살짝 보고, 그리곤 무심코 벽에 걸린 사진 속의 젊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눈길을 돌린 나는 그러한 리얼한 감개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로리에서  인생은 꿈과 같다

 

(2006년 12월 19일 작성, 원문: 중국어)
(사진촬영 : 이시카와 도모코)

 

위화(余華)

1960년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 출생.
『18세에 길을 나서 먼 길을 가다』(1987년)을 시작으로,『4월3일 사건』(1987년),『세상사는 연기와 같다』(1988년) 등의 중편소설을 집필. 장편소설『살아간다는 것』(1992년)은 장이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최신작『형제』(2005년)는 문화대혁명에서부터 현대까지 꿋꿋이 살아 온 형제를 그린 소설로, 중국에서 10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遠近(wochi kochi) 제16호(Apr./May.'07)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