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미노 유타카(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장)
「도시의 얼굴」인 미술관
사회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오늘날, 로컬성(local) 즉 지역성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도시의 경우엔 그 지역이 갖는 오리지널리티를 내세우는 것이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 남기 위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된다. 최근 지역의 특성을 활용한 지역 브랜드화의 흐름이 눈에 띄고 있는데, 이것 또한 그러한 동향의 하나일 것이다.
세계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수 많은 매력적인 도시가 있다. 그들 도시의 공통점은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활발하게 생산활동을 하고 생활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 그 옛날 서양에서는 성이나 교회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일본에서는 성이 지어지고 조카마치(城下町; 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시가지)가 생기며, 절이 건립되고 몬젠마치(門前町; 신사나 절 앞에 발달한 시가지)가 생겼다. 현대에는 미술관이 도시의 얼굴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예가 많이 보여진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파리의 루브르미술관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Victoria & Albert Museum)의 마크 존스 관장은 2006년 1월에 일본에서 개최된 제2회 21세기 뮤지엄서미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최근 주목할만한 뮤지엄 신설의 조류는 유럽, 일본, 미국과 같이 전통적으로 뮤지엄이 많은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2010년까지 북경에서 35개, 상해에 75개, 중국 전체로는 1000여 개의 뮤지엄이 탄생할 예정입니다.」(다카시나 슈지(高階秀爾)ㆍ미노 유타카(蓑豊) 편저『뮤지엄 파워), 게이오기쥬쿠(慶應義塾)대학 출판회)
이러한 동향은 미술관ㆍ박물관의 기능이 단순한 작품진열의 장을 넘어 도시에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가 되고 있는 증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가 드디어 그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일본의 현 상황을 보면「하코모노(箱もの: 문화공간 등의 건물만 지어주는 행정지원사업)」행정에 대한 비판이나 경기 침체로 인한 운영비 삭감으로 다수의 미술관, 박물관이 폐관 위기에 빠지거나, 지정관리자 제도의 여파로 공립미술관의 운영이 민간에 위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통과 창조의 도시 만들기
가나자와시의 인구는 현재 46만명이다. 3개의 평지 사이에 2개의 커다란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에도시대부터 가가번(加賀藩; 현재 이시카와 현)의 조카마치로서 현재에 이어지는 도시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마에다가(前田家)는 학술과 문화를 융숭하게 장려하여, 그 결과 다종다양하며 질이 높은 전통공예가 탄생, 에도나 교토의 문화와는 또 다른「가가백만석(加賀百万石)문화」로 불리는 독특한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다행히도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피해를 면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이어온 건축물이 많아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대단히 풍족한 환경 속에 있다. 따라서 가나자와시는 남겨진 문화유산을 후세를 위해 소중하게 보존할 책임이 있는, 이를 테면「역사에 대한 책임이 있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매력있는 도시 만들기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전통만 생각
“가나자와라는 도시는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만 생각하면 진보는 없다고 여겨져,「전통과 창조」는 항상 마음에 세우고 있는 명제이다. 가나자와의 개성은 학술이며 문화이고, 그것을 기저로 자리잡은 산업이고 환경이다. 도시는 작아도 좋으며, 독특한 빛을 가지고 있어 이를 더욱 빛내어 간다. 그리하면 국내외로 뻗어나가, 나아갈 길은 열릴 것이다.”
「보고 참여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가나자와시는 지금 새로운 문화를 중심으로 한 도시 만들기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통예능이 번성한 지역에 새로운 음악예술의 활동으로서 설립된「오케스트라 앙상블 가나자와」(1988년), 시 건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가나자와의 우수한 전통공예의 계승,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가나자와우타츠산(卯辰山)공예공방」(1989년), 젊은이들의 예술활동의 장으로서 연중무휴 24시간 이용이 가능한「가나자와시민예술마을」(1996년), 새롭게 시민들의 창작활동의 장으로 설립된「가나자와유와쿠창작의 숲(金沢湯涌創作の森)」(2003년), 그리고 2004년 10월 9일에 10년간의 구상기간을 거쳐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이 개관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의 설계에 의한 유니크한 건축은 지역 주민들을 비롯하여 방문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임팩트를 주었다. 문턱이 높아 폐쇄적인 미술관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밝고 외부에서 내부로의 이동에도 높이차가 없어 전체적으로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문턱 등을 없애는 방법) 방식의 개방적인 공간설계로 되어 있다. 입장료가 필요 없는 구역인「프리 존」이 미술관 곳곳에 넓은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어, 무료 구역만을 걸어도 충분히 미술관람을 즐길 수 있다. 4군데의 출입구로부터 이어지는 통로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며 마치 도시 속의「도시」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축의 재미뿐만 아니라 직접 만지며 놀 수 있는 작품이 많은 것도 유니크하다. 예를 들어 수영장 밑 세계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을 체감하는 작품 등이 있다. 각각의 작품에는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덧붙이는 등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마음을 쓰고 있다. 이러한 것들의 특징은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는 미술관을 연출하며,「보여주는 미술관」이 아니라「보고 참가가 가능한 미술관」으로의 변환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위-가나자와우타츠산공예공장, 아래-가나자와유와쿠 창작의 숲
아이들이 이루는 역할
또한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미술관」이라는 미션을 짊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고도 정보화사회를 짊어지게 될 아이들에게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인간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인간력, 즉 풍부한 인간성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수련하는 것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아니던가. 예를 들어 어릴 적부터 음악회에 간다거나 미술관을 방문하거나 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인간형성의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평소에 늘 미술관은 생활 속에 동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오랜 기간 미국의 미술관에서 근무해 왔는데, 미국의 미술관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방문하여 예술과 접촉하는 한편, 일본에서는 그러한 것을 볼 수 없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에 온 아이들은 장래에 자신의 아이들도 데리고 미술관을 방문한다는 통계도 있다. 어린 시절에 무엇에 어떻게 감동하는 지가 중요한 것이다. 차세대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진짜를 보여주고 만지고 느끼게 하는 것이 풍부한 정신을 가진 인재 육성에 연결되며,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에 입각하며 가나자와시의 교육기관에 협력을 요청하여, 시에 있는 모든 초ㆍ중학생 41,000명을 대상으로 무료 왕복 버스편을 제공, 미술관에 무료로 초대하는 기획을 2004년 11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실시하였다.「뮤지엄 크루즈」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에는「한번 더 티켓」이라는 티켓을 준비하여 아이들용으로 만든 가이드북 안에 2장씩 넣어 배부했다. 그 후에 이 티켓이 7,000장 가까이 돌아 왔다. 즉 아이들은 14,000명 이상의 가족이나 친구를 데리고 다시 방문해준 것이다. 지금도 아이가 부모에게 자랑스럽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요즈음 학교 교육의 재검토가 거듭 요구되고 있다. 교육은 영어로「에듀케이션」, 즉「끌어 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의 교육은「개인의 능력을 끌어내다」인 것이나, 일본의 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가르치다」에 치중하는 것 같다. 수험을 목적으로 하는 암기중심교육의 폐해로 해답만을 바로 원하고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 학생이 늘어난 것 같다.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사고하는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미술관에서는 몇 개의 사항을 느끼고 생각하기 위한 힌트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 작품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좋은지 어떤지는 본 사람이 직접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은 최고의 교육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폭 넓은 세대의 모두에게 진짜 제대로 된 작품과 마주보고 자신은 어떠한 인상을 가지는지 직접 느끼고 생각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을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가나자와21세기 미술관
지역사회의 경제적 효과
미술관은 그 지역으로부터 사랑 받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시민들을 미술관의 팬으로 만들어 한명이라도 더 많은 재방문 관람객을 만드는 것이 이후 운영의 관건일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자신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
풍부한 문화적 토양을 가진 가나자와에서도,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탄생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결코 쉽지 만은 않았다. 건설준비단계에는 전통 거리에 이해할 수 없는 현대 아트라는 등의 야유도 많았다. 우리는 개관 전까지 지역 상점가 분들과 100회 가까운 간담회를 열어「미술관이 도시에 생기는 것은 그 지역에 있어서 플러스 적인 요소이며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끈질기게 설명하며 협력을 요청했다.
실제로 필자가 관장을 겸임하는 오사카시립미술관이 2000년에 개최한「베르메르와 그 시대전」에서는 전람회 기간 중 상점가의 매상이 통상보다 2~3배 오른 적도 있어, 미술관은 커다란 상승효과를 낳는다고 실감하고 있었다. 그 결과 여기 가나자와에서도 이해를 얻어 상점가에 포스터를 게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술관을 모티브로 한 과자나 관장 이름을 붙인 메뉴를 내는 가게마저 생겨나고 있다.
미술관의 탄생으로 2003년 이시카와(石川)현청이 시 중심부에서 교외로 이전한 후 줄어든 보행량이 증가하고 활기가 돌아왔다는 소리도 듣는다. 사실 개관 후 1년 동안 당초 예상을 대폭 상회하는 157만 명이 본 미술관을 방문, 그 경제파급효과는 328억엔에 달했다(건축에 수반하는 효과가 217억엔, 관의 운영ㆍ관람객의 소비에 의한 지출이 111억엔). 2년째도 120만명을 넘는 분들이 방문하고 있다.
이렇듯 확실히 숫자로 표기한 것으로 미술관 탄생이 지역에 가져오는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미술관이 도시를 바꾼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나 주위의 반응은 기쁠 따름이며, 앞으로도 미술관을 매체로 한 커뮤니케이션의 고리를 넓혀 더욱더 도시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
생활과 밀착된 체험의 제공
재작년에 프랑스 낭트시장 장마르크 에호 씨 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우리의 도시재생 방침은 마을의 역사와 아이덴티티를 존중하는 것에 더하여 새로운 문화적 요소를 거듭해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낭트시는 조선업이나 식품제조업으로 번영했으나 80년대에는 공장 이전 등으로 쇠퇴, 대량의 실업자를 안고 있었다. 그러한 낭트시에서 문화정책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계획을 공약으로 1989년에 당선된 것이 에호 시장이다.
에호 시장은 문화에 의해 시민 생활의 질을 높이고 창조력을 끌어냈다. 문화의 수준이 높고 창조성이 있는 거리에는 사람도 기업도 집적된다. 이러한 전략이 지금 낭트시를「프랑스에서 가장 살고싶은 마을」로 새로 태어나게 한 것이다. 가나자와시도 낭트시 이상으로 문화의 효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일본의 미술관은 사람들의 생활로부터 동떨어진 이미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의 미술관은 미술에 관한 선입관이나 의식적인 벽을 없애버리고 미술과 일상생활의 거리를 좁혀,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부담없이 참가할 수 있는 공간이나 체험을 계속해서 연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누구나 방문하고 느긋하게 쉬는 기분으로 배우며 좋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그러한 호화를 누릴 수 있는 장소, 미의 기쁨을 진심으로 맛 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미술관 본래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적극적으로 시민의 관심을 모아 대화해 나갈 수 있는 미술관이야말로 21세기의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미술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나 지역 그리고 사회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서 지속되고 싶다고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바라고 있다.
사진출처: 가나자와21세기 미술관
미노 유타카(蓑豊)
게이오기쥬쿠대학 문학부 졸업. 하버드대학대학원 미술사학부 박사학위 취득. 캐나다 몬트리올미술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미술관, 시카고미술관에서 동양부장 등을 역임. 1995년부터 오사카시립미술관을 지냄. 2004년 4월에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관장과 가나자와시 문화고문으로 취임. |
遠近(wochi kochi) 제15호(Feb./Mar.'07)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