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은령 (LUXURY 편집장)

 

지난 3월,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는「한일 저널리스트 교류사업 – 한일 여성지를 중심으로」을 주최, 한국의 유력 월간 여성지 편집장 4인을 5일간 일본으로 초청하여 일본의 관계기관 방문 및 의견교환, 워크샵 등을 가졌다.

 

공자는 ‘멀리서 벗이 찾아오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했다. 그런데 멀리 찾아간 곳에서 ‘동업자’를 만나면 그보다 훨씬 더 반갑다. 생면부지의 그 사람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같은 보람을 느끼며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일본국제교류기금으로부터 도쿄 방문을 제안을 받았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참여를 결정했던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신문이나 방송과 달리 잡지라는 매체는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그리 빈번한 편은 아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짧은 일정 동안 만난 일본의 편집자들은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이 아닌, 인생 선배였고 동료였다.

 

강연과 토론이 이어지는 공식 행사, 처음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을

사진제공 : U-LEAG CO., LTD

때만 해도 점잖게 체면을 지켰지만 이야기가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뭐야, 우리 모두 너무나도 비슷하게 살고 있잖아?”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사거리를 찾아 헤매고 마감에 쫓겨 새벽이 되어야 퇴근하기 일쑤이며 책과 잡지로부터 점점 고개를 돌리는 독자들에 대한 걱정에 이르기까지 빼놓지 않고 비슷했다. 마음에 담고 있는 생각이 비슷하고 편집장이라는 일의 무게 또한 비슷하기에 굳이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열정을 다해 독자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든다”는 <이키이키>의 카타요세 편집장과 “시대를 앞서가는 잡지를 만드는 일은 몇 년간은 좀 힘들어도 결국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는 <니케이우먼> 노무라 편집장의 말은 편집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의 장벽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국경이나 인종쯤은 훌쩍 뛰어넘는 그들만의 공용어가 있으니 말이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후 이어진 저녁 식사에서 손짓발짓에 필담까지 동원해 선배로부터는 경험을 배우고 후배로부터는 새로운 시각을 배운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이해할 때 그 시작점을 정치나 경제와 같은 거대담론으로 삼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해 일을 하고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자기 자신을 꾸미고 쇼핑을 하고 여행을 떠나는 일상의 중요성을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일상을 주 소재로 다루는 잡지가 맡아야 할 임무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고 더욱 다양해지는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도전을 하게 될 거라고 참여한 모든 편집자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서로를 응원했다.
잡지사를 방문하고 서점을 찾아가고 유통센터와 유행의 중심지를 바쁘게 돌아본 5일간의 도쿄 방문. 인쇄 매체의 쇠락을 걱정만 하는 대신, 직접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편집자들의 사무실과 수백 수천 종류의 잡지를 앞에 두고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부지런히 책을 고르고 책장을 넘기던 도쿄 대형 서점의 모습은 이번 행사에 참석한 한국의 편집자들에게 그 어떤 아름다운 경치보다 더 감동적이고 한없이 부러운 풍경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김은령

1994년 이화여자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주식회사 디자인하우스 입사. 잡지「행복이 가득한 집」기자를 거쳐, 2004년부터 2006년 9월까지 동지 편집장을 역임. 11월부터 현직.
1998년부터 1999년까지는 다국적 미디어컨설팅사에 근무. 2000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언론학 석사). 대학 등에서 미디어마케팅에 관련한 강연을 하는 것 이외에도 <비즈 라이팅>, <아름다운 청년, 대니 서의 집> 등의 저서ㆍ번역서도 다수.

 

「をちこち」제17호(June./July.'07)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