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국제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08>의 개최가 채 1년이 남지 않은 가운데, 장소 결정, 참가 작가의 선정 등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08>의 종합디렉터이신 미즈사와 츠토무씨와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씨가 국제미술전과 도시의 관계, 그리고 요코하마에서 국제미술전이 열리게 된 것에 대한 의의 등을 중심으로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미즈사와 츠토무(水沢勉)
 요코하마 트리엔날레2008 종합디렉터
 요코하마현립 근대미술관 기획과장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
 건축가, 요코하마국립대학 대학원 준교수

 

 

미술과 함께 도시와 환경을 체험한다


미즈사와
니시자와씨는 국제전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십니까.

이스탄불 비엔날레는 도시의 역사적 건조물을 이용한 전시가 관람 포인트 중의 하나. 2003년 전시회장 풍경. 오자와 쓰요시(小沢剛)의 ‘Vegetable Weapon ’
니시자와
저는 전공이 건축설계이기 때문에 국제전이라면 역시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건축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하세가와 유코씨(長谷川祐子, 당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학예과장)가 큐레이터를 맡으셨던 제7회 이스탄불 비엔날레(2001년)도 갔었습니다.
미즈사와이스탄불 비엔날레라면 ‘에고푸갈:다음 출현을 위한 자아로부터의 푸가(Egofugal: Fugue from Ego for the Next Emergence)’라는 주제로 열렸던 국제전이지요. 그러한 경험에서 어떤 인상이 남아 있습니까.
니시자와 도시 안에 산재하는 오래된 역사적 건축물을 이용해서 공간적인 제안을 해나간다거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건축전의 경우, 모형을 놓고 패널을 전시해 보여주는 스타일로 형식성이 강합니다. 정돈된 느낌은 있지만 어느 도시에서나 비슷한 전시 스타일입니다. 미술전의 경우는 좀 더 도시에 오픈되어 있고 사이트 스페시픽(특정 장소에 귀속되는 형태)해서, 전시 장소가 모스크인가 성당인가 아니면 군대의 무기공장인가에 따라서 작품이 전혀 다르게 바뀌는 다양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미술을 체험하는 것과 그 도시와 환경을 체험하는 것이 일치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스탄불처럼 대단히 정열적이고 기후풍토가 변화무쌍하며 사람들도 활동적이고 아시아와 유럽이 혼재된 역사적인 장소에서 국제전이 열린다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미술전의 배경에서 보이는 도시의 역사성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1951년부터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국제미술전. 전시 장소는 브라질리아를 만든 오스카 니마이어가 설계한 시실로 마타라초관. 3만 평방미터의 전시 공간을 가진 거대한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건물(아래)로 주변의 공원을 포함하여 한 곳에 집약되어 있어 많은 관람객들로 붐빈다. 위의 사진은 전시장 입구 풍경. ‘베네치아는 데카당스한 재미가 있다. 그에 비해 상파울로는 건물자체가 강렬한 사유력을 갖고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모더니즘적인 꿈을 느끼게 하는 국제전이다’라고 말하는 미즈사와씨 

미즈사와 베네치아 비엔날레도 그런 면이 있지요.
니시자와 베네치아에서도 미술을 체험하는 동시에 도시공간과 사회공간, 사람들의 사회적 논의의 중심 등을 느끼고, 역사적인 것과 환경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즈사와 그렇지요.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국제전으로서, 각국이 국가별로 참가하여 파빌리온끼리 경쟁해 가면서, 최근에는 점차 그 파빌리온들이 도시 전체에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베테치아라는 도시 전체를 체험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게 되는 것이지요.
니시자와 1996년이었나요, 제가 처음으로 베네치아에 갔을 때 지암바티스타 티에폴로라는 프레스코화로 알려진 바로크화가의 탄생 300주년 전시회에 갔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시회장이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즈사와 벽화이기 때문에 옮길 수가 없었군요.
니시자와 그렇습니다. 미술관에서 입장료를 내면 전시회장의 관람순서가 표시된 안내도를 줍니다. 베네치아의 도시 지도였습니다. 그 지도를 보면서 도시를 돌아다닙니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관이라는 건축의 기존 카테고리를 깨는 도시의 활용 방법이면서 동시에 미술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미즈사와 티에폴로의 작품은 교회를 비롯하여 도시 전체에 역사적인 작품으로 녹아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전시라고 하는 컨텍스트로 떼어내서 생각해본다는 것이지요. 베네치아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역사나 시간, 그리고 공간도 그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니시자와 그렇지요. 도시 자체가 미술품 같은 곳이니까요.
미즈사와 베네치아 비엔날레 정도의 국제전이라면 역시 그 배경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장소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이라면 교토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보기 드문 문화적 확산 형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니시자와 국제전에는 전 세계의 미술 관계자들이 모입니다.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가 그렇게 잘 알고 있는가 하는 데에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에 미노 유타카(蓑豊)관장에게 이끌려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갔습니다. 물론 비엔날레 행사와는 별도였습니다만, 거기에서 일본 가나자와에 미술관이 생긴다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국제전은 동시에 또 다른 미술전과 행사들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파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젤 아트페어에서도 전시회장 주변에서 아트페어와는 관계 없는 현지 아티스트가 작품을 보여주면서 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즈사와 국제전에는 그러한 시너지 효과가 있고 시장의 논리 안에도 시너지 효과가 존재합니다.

 

 

공간에 민감한 감각을 지닌 현대 아티스트


니시자와 아티스트들을 접하면서 느끼게 되는 점은 모두들 공간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작품이 어떤 상황에 어떻게 놓여지는가에 신경을 씁니다. 현대미술은 주택처럼 아티스트들이 모두 ‘나만의 집, 다른 사람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자신만의 환경을 만들려고 합니다.
미즈사와 같은 방에 10개나 되는 다른 작가 작품이 함께 전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요.
니시자와 같은 방에 전시된다고 해도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공간이 필요합니다. 평화로운 상태를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을 보면 아티스트가 얼마나 공간적인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작품의 소재와 미디어가 다양화됨에 따라 그릇에 물을 채우는 것처럼 조용한 환경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큰 소리를 내는 작품도 있어서 함께 전시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미즈사와 과거에 미술관은 좀 더 스태틱한 미의 전당이었습니다. 거기에 담겨지는 미술에는 형식이 있었고 그 형식을 파고 들어가 보면 인지되고 축적되어, 컬렉션 되어 안정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술 작품 자체가 좀 더 동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해서, 미술전은 미술관 안에서 열 수도 있고 일본의 에치고 쓰마리(越後妻有) 아트 트리엔날레처럼 완전한 전원 속에서 열 수도 있습니다. 실로 다양합니다. 그러한 자유로움이 기존의 미술관 형태에 영향을 미치고 미술관의 이미지를 바꾸었습니다. 니시자와씨가 관여하신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현대미술이 요청하는 열린 미술관

 

니시자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라는 컨셉으로 미술관을 만들었습니다. 건축 계획이 현대미술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현대미술의 현대성에 맞는 새로운 미술관이 실현될 수 있는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 결과 생긴 특징 중의 하나는 전시실과 전시실을 직접 연결하지 않고 분리시키는 독립 배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관람객이 관람 순서를 스스로 선택하게 됩니다. 기존의 미술관은 일반적으로 제1전시실, 제2전시실이 바로 연결되어 있고, 기획하는 측에서 관람 동선을 정합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제5전시실로 불쑥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즉 각 전시실의 체험 순서를 방문객이 스스로 만들어갑니다. 이런 부분도 현대미술과 현대적인 전시회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지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외관. 전체가 원형으로 정면이 따로 없고 어디서나 출입이 가능하다. 내부는 전시실이 독립된 형태로 분리되어 있어 방문객은 자유롭게 관람 순서를 정할 수 있다. 니시자와씨와 세지마(妹島)씨가 설립한 SANAA가 설계
미즈사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어느쪽에서 들어와도 괜찮도록 설계되어있어요. 권위적이지 않다는 점이 대단히 큰 특징입니다.
니시자와 누구에게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와 권리가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으며 무엇이든 작품이 될 수 있는 현대미술의 특징이 건물에도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님이 처음에 하신 말씀은 ‘문턱이 낮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일본의 미술관은 숲 속이나 산 위에 있는 공원 속에 만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미술계 관계자나 연구자 등 극히 한정된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었습니다. 그런 곳이 아니라 도서관처럼 열린,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미술에 흥미가 없는 사람도 와보고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저도 건축가로서 도시와 사회에 건축을 오픈시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생각했고,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즈사와 예전에는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닫혀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만큼 전 세계에 국제전을 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생기게 된 이유는, 현대미술이 도시의 기능을 바꾸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가능성을 어떻게 집약해 나갈지 아직은 아무도 모르지만, 베네치아 등지에서 보면 적어도 분명히 그런 에너지가 움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니시자와 그런데 요코하마에서 개최되는 국제전으로서 이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요코하마의 역사와 문화, 도시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계십니까.
미즈사와 처음에는 상당히 의식을 했습니다만 최근에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물론 아티스트들은 공간과 개최지의 역사를 의식해서 그런 것들과의 연결성이 작품에 표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으로서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으며 결과적으로 나타나면 된다’고 지금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니시자와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현대미술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딘가에 강력하게 집약되는 것보다는 완전한 확산형으로 무언가 절로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가들은 공간에 민감하기 때문에 주어진 공간에서 생각지도 않은 확산 형태를 찾아냅니다. 그러한 장을 마련하는 것이 국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2007년 8월 20일,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사무국에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2008에 대하여

2008년 9월 13일(토)부터 11월30일(일)까지 79일간에 걸쳐 요코하마를 무대로 개최되는 현대미술의 제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2008’. 미즈사와 츠토무 종합디렉터가 내세운 “Time Crevasse”라는 주제로 세계 각지에서 80여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다양한 작품(영상, 인스톨레이션, 사진, 회화, 조각 등)을 전시합니다. 세계 최첨단의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신작을 중심으로 전시하는 한편, 개최지와 개최 장소의 매력과 개성을 살린 작품(사이트 스페시픽 워크)도 다수 전시되는 등 도시와 어우러진 대규모 ‘미술제전’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をちこち」제19호(Oct./Nov.'07)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