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는 번역으로 어떻게 단련되는가(1)

 

번역 현장에서는 외국어가 일본어로 어떻게 의미가 옮겨져서, 새로운 언어로 구성될까. 풍부한 번역 경험을 갖고 있는 세 분에게 일본의 외국문학 번역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번역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가시마 시게루(鹿島茂)

메이지대학 국제일본학부 교수

가메야마 이쿠오(亀山郁夫)

도쿄외국어대학 학장 고노스

고노스 유키코(鴻巣友季子)

번역가

 

■ 작품 제목을 어떻게 번역하여 붙일 것인가 ■
가시마 번역서 간행에서는 우선 첫번째로 책 제목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큰 문제가 됩니다. 저는 1999년 발자크 탄생 200주년에 『고리오 영감』이라고 번역된 《Le pere Goriot》를 『뻬르 고리오』(후지와라서점)로 바꿔서 번역했습니다. ‘뻬르’는 ‘할아버지’라기 보다는 애칭이고, 따라서 이름의 일부로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지요. 때로는 잘못된 제목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레이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입니다. 마치 육체 속에 악마가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원제는 Le Diable au Corps입니다. 불어로 일상적인 장면에서 J’ai le diable au corps.라고 하면, 몸이 근질근질하고 피가 들끓어 가만있지 못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또는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즉 ‘청춘의 아픔’ 정도가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가메야마 저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고분샤 고전신역문고)을 번역해 출판할 때 『카라마조프형제들』로 할 것인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할 것인지 망설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새롭게 『카라마조프형제들』로 하려고 생각했습니다만, 괜히 색다르게 하려다가는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보수적인 생각으로 기울어서 최종적으로는 오소독스한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고노스 제가 『폭풍의 언덕』(신쵸문고)의 신역(新譯)을 출판한 것은 2003년이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역의 샐린저 『캐쳐 인 더 라이』(하쿠스이샤)가 출간되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설마 영어 제목을 그대로 가타가나로 표기해서로 『워더링 하이츠』로 하자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야말로 아파트 이름 같은 느낌이 드니까요(웃음). 원제에서 가장 동떨어진 예로는, 98년에 출판된 토마스 쿡의 미스테리 느낌이 강한 문학작품이었습니다. 원제가 The Chatham School Affair였으니, 그대로 번역하면 『채덤학교의 추문』이라든가, 『채덤학교 사건』이 되지만,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전혀 상관없는 『진홍색 기억』이라고 붙였고 판매에서도 성공했습니다. 제가 번역한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원제가 전혀 다른 훅의 책에도 일본어 제목에는 ‘기억’을 붙여서 출판하고, 일본에서만 ‘기억 3부작’이라 부르면서 판매하는 것 같습니다.
가시마 옛날 사람들이 붙인 제목에는 참 좋은 것도 있었지요. 예를 들면 모파상의 Une Vie는 직역하면 『어떤 인생』『어떤 생애』가 되겠지만, 이를 『여자의 일생』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덕분에 하나의 단어처럼 되었고, 모리모토 가오루(森本薫)의 희곡 『여자의 일생』등에도 연결됩니다. 『어떤 인생』이라고 번역했다면, 일본에서는 모파상이 읽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2000년을 전후로 고전을 재번역한 도서가 늘어나기 시작하여 일종의 “번역붐”이 일고 있다.


■ 왜 지금, 신역이 다시금 평가를 받고 있는가 ■
가시마 신역고전, 즉 고전의 재번역이 현재 상당히 진행되고 있고, 게다가 잘 팔리게 되었습니다. 가메야마 교수님은 예전부터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가메야마 이제 50대도 거의 끝나가고 제 인생의 한 매듭으로서, 뭐든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꼭 이걸 하자고 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문학작품을 번역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제가 내고 싶다고 출판사에 부탁해서 출간한 책은 1000~1500부 팔리는 정도였으니, 설마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을 번역할 기회가 올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가시마 일본은 계속해서 새로운 번역을 해 온 나라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에드가 알란 포의 번역이라고 하면 보들레르에서 완성되었다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단지 최근에 들어 일본에서도 갑자기 신역이 주목을 받게 되었지요. 왜 그럴까요.
고노스 20세기에서 21세로 넘어가는 시기에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개정역이 추진되고, 헤밍웨이의 단편집이 전부 새로 번역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들을 번역해 내놓는 번역계에서도 잠시 시간적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보자는 흐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랬더니 센고쿠 히데요(千石英世)씨가 멜빌의『백경』 신역을 내고, 제가 번역한 『폭풍의 언덕』,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캐쳐 인 더 라이』로 이어졌으며, 『어린 왕자』의 신역이 여러 종류 간행되고, 그리고 고분샤의 고전신역문고가 나왔습니다. 거기에 가메야마 선생님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나와서, 고전의 새로운 번역이 한층 더 확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8,19세기 고전을 다시 번역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80년대 무렵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 세대의 번역자들이 돌아가시거나, 당시의 편집자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점차 세상을 떠나게 되어 그 후를 계승해야 할 때에 비로소 새로운 번역이 실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메야마 저도 러시아 문학자이며, 여러 좋은 번역으로 유명한 하라 타쿠야(原卓也)선생님이나 에가와 타쿠(江川卓)선생님이 정정하게 살아 계셨다면 절대로 신역을 내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두려워서 손을 대지않았겠지요. 그분들 앞에서 저의 초라함을 절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못하시는 일을 내가 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두 분이 살아계셨다면 고전신역에서 러시아문학 붐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정도로 신쵸문고의 하라 선생님 번역은 정말 정확하고 격조 놓은 번역입니다. 그래서 제가 해보려고 한다면, 상당히 전략을 바꿔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가시마 프랑스 문학의 세계에서는 대학마다 각각 사정이 달랐습니다. 도쿄대학은 와타나베 가즈오(渡辺一夫)선생님 이후에 자유도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이에 반해 교토대학에서는 이부키 다케히코(伊吹武彦), 이쿠시마 료이치(生島遼一)선생님 은퇴 후에도 ‘번역을 다시 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 외국문학전집 번역으로 집을 마련하던 시대 ■
고노스 과거에는 ‘번역으로 집을 마련한다’고 말이 있었지요.
가시마 ‘아카홍(빨간 책)’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중앙공론사의 세계문학전집으로 상당히 많은 집이 건축되었습니다. 고마바(駒場)의 이노카시라선 부근지역과 오다큐선 부근지역은 문학전집 주택이라고 불릴 정도였고, 실제로 제 선생님이신 야마다 쟈쿠(山田爵)씨가 『보바리 부인』을 번역하고 세이죠(成城)에 세운 ‘보바리 부인 저택’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후에 중앙공론사에서 나온 『감정교육』으로는 어떻게 되셨어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증축하는데 보탬이 된 정도였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미 문학전집 붐은 시들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문학 번역 수요가 뚝 끊겼고, 우리들 세대는 비교적 새로운 사상관계 서적을 번역했습니다. 당시 출판상황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누보로망이든 뭐든, 문학을 번역하면 되는데, 그 즈음은 기호학이 일본에 소개되었던 시기였고, 제가 1981년에 처음으로 시작한 번역은 크리스티앙 메츠의『영화와 정신분석』이었습니다. 너무 어려운 나머지 작업을 하다가 위가 안 좋아져서, 제가 ‘번역성 위염’이라고 이름을 붙일 정도였습니다(웃음).
가메야마 과거에 일본에서 외국문학이라 하면 러시아 문학이었는데, 그 후의 낙차가 심했습니다. 프랑스처럼 새로운 소설의 흐름이 있으면 좋겠지만, 20세기 후반의 러시아는 솔제니친 한 명 정도였고 그 외에는 번역할 가치가 없는 매우 불모지 같은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로, 새로운 문학을 번역하기는 좀처럼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또 소비에트 시대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작품의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는 독자가 길러지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능숙한 번역을 무기로 한 프로번역가들의 등장 ■
가시마 과거에는 예를 들어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이 없으면 번역을 할 수 없거나, 학회의 정점에 있는 선생님의 추천이 없으면 출판사도 부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언제부턴가 번역학교를 졸업한 아주 능숙한 번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을 점점 맡기는 형태로 바뀌었지요.
고노스 메이지 시대(1868~1912년)부터 모리 오가이(森鷗外), 나가이 카후(永井荷風) 등의 문호들이나 대학교수가 번역을 하는 역사가 계속되어 왔고, 다이쇼(1912~1926년)나 쇼와시대(1926~1989년)에도 계속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70년대 무렵부터 하야가와 쇼보(早川書房)의 포켓 미스테리 등이 번역자를 다수 양성하여, 아카데미즘과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번역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가시마 하야가와 쇼보의 미스터리와 SF물 번역은 확실히 학력 등은 전혀 상관이 없지요. 예전에 오야소이치(大宅壮一) 번역집단의 한 사람이었던 오쿠보 야스오(大久保康雄)씨가 이끄는 오쿠보 스쿨과 그 주변에 있었던 시인, 아유카와 노부오(鮎川信夫) 등이 번역을 했던 것입니다. 미스터리와 SF 등의 분야와 하이컬처라고 불리는 문학과의 경계가 없어졌다는 이유도 있겠지요. 예전에는 내용으로 구분을 했었지만, 지금은 번역을 잘 하면 맡기는 형태가 많아졌습니다.
고노스 단지 평가의 문제인데, 단순히 번역문이 능숙하면 그걸로 된다는 경향도 꽤 문제가 되고 있지요.
가메야마 저는 도스토예프스키 전문가도 아니고, 왜 저 사람이 하는가 라고 전문가들이 반발한 적도 있습니다. 비전문가로서 시도를 했다는 의미로는 오쿠보 야스오 스쿨에 속한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타자의 언어를 옮기는 것은, 역시 타자의 언어를 정확한 의미로 알아듣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저는 귀가 안 좋다고 할까요 계속 어렵지요.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극복해보자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가시마 현대 독자들의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라’고 해도, 이와나미 문고에 수록된 과거의 요네카와 마사오(米川正夫) 역으로는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역이 필요하게 되고, 고문샤의 고전신역문고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수준을 낮추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메야마 저도 너무 부드럽게 하는 것은 범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웃음). 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결코 좋은 번역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쉽게 번역한 것은 사실입니다. 한자를 히라가나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음악을 듣는 느낌으로, 시간이 가는 줄 잊고 읽을 수 있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한자를 알게 될 수도 있는데, 그 기회를 없애버린 것은 말하자면 일본 국어교육의 수준을 낮추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번역을 하면서도 계속 들었습니다.


■ 화자의 ‘목소리’를 의식한 번역이 늘었다 ■
고노스 좀 전에, 가메야마 선생님이 타자의 언어를 알아듣는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고, 목소리가 강한 번역이라고 느꼈습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한 사람의 화자가 계속 말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최근에 출간된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의 신역(고문샤 고전신역문고)에서 누마노 쿄코(沼野恭子)씨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읽어주는 형태’라는 설정으로 ‘데스마스’형태로 다시 번역을 했습니다. 불어에서는 츄죠 쇼헤이(中条省平)씨가 바타이유의 『안구담(眼球譚)』을 『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고백 형식을 택해 번역한 경우도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역 『캐쳐 인 더 라이』에서, 지금까지 독자 등의 막연한 존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져, 번역되지 않았던 주어 You를 ‘당신’이라든가, 자기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재인식하여, 현대의 신경증적인 모놀로그로 재현했습니다. 길게 보면, 목소리가 강한 번역이 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는 영문학에 관해서 말하면, 지금까지의 반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세기 초두에 조이스나 울프가 나왔을 때부터, 소설 안에서 화자가 등장해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말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문학은 소리를 내어 읽기 어려운 문학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18세기, 19세기 고전을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것도 화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이 많고, 또 신역을 통해서 목소리의 약동감이 전해오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감을 중시하는 시점으로 작품을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한 신역으로 인해 생명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접하지 못했던 따뜻함에 독자들이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가메야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대부분이 대화입니다. 그렇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대화가 아닌 문장으로 쓰여진 것 같은 구축성 있는 소설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결국, 대화이니까 대화답게 번역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믹시 등에서 유통되는 젊은 사람들의 언어는, 그야말로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된 것처럼 장음 부호 하나, 촉음 ‘つ’ 의 사용방법의 하나를 봐도 정말 직접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 대사처럼 무대에서 듣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도록 의식해서 쉼표와 마침표, 장음표기를 넣어, 가능한 신체적인 감각으로 환원될 수 있는 번역을 하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문고판으로 나와 있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왼쪽부터 이와나미문고(요네카와마사오 역), 신쵸문고(하라타쿠야 역), 고분샤고전신역문고(가메야마이쿠오 역)

■ 과거의 번역은 숨을 쉬는 방법이 현대인과는 맞지 않게 되었다 ■
가시마 생각해 보면, 도스토예프스키, 조이스, 프루스트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모더니즘으로써, 과거에 있었던 구전문학을 활자문학으로 부활시켰습니다. 즉 전근대적인 것의 복권(復權)을, 매우 첨예한 모더니즘으로서 꾀한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목소리를 복권시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더니즘의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평을 많이 쓰다 보니 비로소 알게 된 것인데, 다른 사람의 문장을 인용해보면 잘 된 문장인지 어떤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단어와 단어를 조합해 나갈 때, 반드시 어딘가에서 숨을 쉬지 않으면 안됩니다. 호흡이 좋은 사람은 긴 문장이라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호흡이 서툴면 짧은 문장이라도 아주 읽기 어렵게 됩니다. 과거의 번역은 그러한 숨쉬기가 현대의 젊은 층과는 맞지 않게 되었다고 봅니다.
고노스 읽고 있으면 금방 숨이 차지요.
가메야마 그러한 의미에서 요네카와 선생님 번역이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은 선생님은 리듬이 매우 좋았지요. 읽고 있으면 단어 하나 하나는 어렵지만, 호흡이 좋았기 때문에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한 시대에는 어느 정도의 속도감을 갖고 읽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시마 속도감으로 말을 하자면, 헨리 밀러의 번역이 있습니다. 지금 다시 번역되고 있는데 매우 좋은 일이지요. 왜냐 하면 헨리 밀러의 번역은 오역이 많고 굉장히 거친 번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밀러의 거친 느낌에는 그것이 딱 맞았습니다. 번역에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 불투명한 번역에 대한 저항으로 상상력이 고조되는 경우가 있다 ■
고노스 에드가 알란 포도 읽기 어려운 번역이 많기 때문에 서서히 재번역 되고 있습니다. 예전 번역으로는 어떤 의미인지 모릅니다. 원래 포의 문장은 애매모호한데, 거기다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또 굉장히 무섭지요(웃음). 번역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새롭게 현대적인 번역이 되면 조망이 매우 좋아져서 시력이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잘 보이지만 그다지 무섭지 않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메야마 정말 그렇습니다. 번역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으로 상상력이 고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투명하면 물속이 들여다보이고 바닥이 보입니다. 그런데 번역에는 다소 불투명함이 있습니다. 그런 불투명함으로 인해서 부풀어오르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전신역의 알기 쉬운 번역은 투명하고 바닥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바닥이 없는 것은 역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는 아마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투명해도 깊은 것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물을 투명하게 하면, 반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확실해집니다. 지금까지의 번역으로는 역시 전부가 희미했기 때문에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시마 그 대표적인 예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의 랭보입니다. 랭보의 불어는 분명히 어렵습니다만, 그러한 어려움이 많은 오해를 낳아 일상적인 단어를 비일상적인 느낌으로 읽게 됩니다. 거기에서 오해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이 까뮈를 번역하면서 ‘gagner sa vie’라는 구절을 ‘인생을 획득한다’고 번역했습니다. 사실은 생활비를 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까뮈니까 하면서 그것을 ‘인생을 획득한다’고 번역한 것입니다. 고바야시 히데오도 그런 뉘앙스로 랭보를 읽고 있습니다. 자아를 100%확립하려는 다이쇼 시기부터 쇼와 시기의 젊은이들이 랭보를 읽으면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더 나아가서 자아를 전부 활용해버리고 싶은 사람이 고바야시역을 읽으면, ‘그래, 바로 랭보야!’라고 되는 것이지요(웃음).
고노스 예전에 락 앨범에 들어있던 가사도 그랬지요. 그다지 특별한 것을 노래하는 것도 아닌데 어렵고 멋있는 가사로 번역되어 있었죠.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고 일본어로 되어 있지만, 원래의 가사를 보면 ‘착각하면 안 되요’라고 말하는 정도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시마 청춘기 특유의 착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것들이 일본 문학사를 바꾼 측면도 있습니다. 전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をちこち」제23호(JUN./JUL.'08)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