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여배우'란 무엇인가. 국가와 사회의 무엇을 표현하는가. 영화에 대한 폭 넓은 연구를 해온 요모타 이누히코 씨와 오랜 기간 아시아·중동 영화를 소개해온 이시자카 켄지 씨, 그리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영화 비평으로 잘 알려진 사이토 아쓰코 씨가 각국의 ‘국민적 여배우’를 생각해보았다.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 메이지가쿠인(明治学院)대학 교수 |
이시자카 켄지(石坂健治)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부문 디렉터 |
사이토 아쓰코(斎藤敦子) 영화평론가 |
프랑스 여배우들은 국민적 여배우를 의식하지 않는다
요모타 그러면 이번에는 과연 유럽에서 국민적 여배우가 성립하는지 사이토씨에게 들어보고자 합니다.
사이토 프랑스는 영화계가 생겼을 때부터 인텔리들이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국민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식이 없었고, 아무래도 예술적 편향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미셸 모건(Michèle Morgan)과 다니엘 다리유(Danielle Darrieux)처럼 지속적으로 활약했던 여배우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국민적 여배우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요.
게다가 프랑스는 일본처럼 획일화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획일화되지 않은 국가의 경우, 어떤 시대에, 어떤 계급을 대표하면 그 나라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점을 고려하면 국민적 여배우를 정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전쟁 중에는 비비안느 로망스(Viviane Romance)와 아를레티(Arletty)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비비안느 로망스는 무용수 출신으로, 단역 시절에 미스탱게트(Mistinguett)라는 당시 대스타의 뺨을 때린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 사건으로 알려져 역할이 들어오게 되어 영화계로 입문했습니다. 처음으로 큰 역할을 맡은 것이 1937년 줄리앙 뒤비비에(Julien Duvivier) 감독의 『멋진 친구들(La Belle équipe)』이었습니다. 샤를 바넬의 부인 역할로, 친구들을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는 요부 역을 맡았습니다. 이후로 이것이 고정역할이 되어 계속해서 요부역할을 하게 됩니다.
크리스티앙자크(Christian-Jaque) 감독의 『카르멘』이라는, 당시 누가 주역을 맡을지 주목되던 국민적 대작 영화에서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카르멘역을 거머쥔 사람이 그녀였습니다. 독일 점령 시기에는 정책적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영화계 교류가 추진되었는데, 그 때 남자 배우 알버트 프레진(Albert Prejean)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하퍼 촬영소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전쟁이 끝난 후에 추방되었습니다.
요모타 아를레티도 그렇지요.
사이토 아를레티도 아버지가 전차 운전수였고 어머니가 세탁부인 가난한 가정 출신이었으며, 가수인 에디트 피아프(Edit Piaf)는 길거리에서 태어나 창녀가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후에는 시몬느 시뇨레(Simone Signoret)와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가 나옵니다. 바르도는 비행기 회사의 사장 딸이었지요. 그 점이 앞 세대와는 달랐습니다. 양갓집 딸이 영화에 출연해 유명해지고 나오는 작품마다 성공을 합니다.
또한 시몬느 시뇨레처럼 원래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전후 프랑스에서 좌익계 영화감독의 눈에 들어 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황금투구(Casque d'or)』에서는 프랑스 남성들을 매료시킵니다. 그녀는 노파 역을 맡을 때까지 계속 연기했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으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요모타 만년에 출연한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은 좋은 영화였지요.
사이토 하지만 그렇다고 비비안느 로망스와 시몬느 시뇨레 중에 누가 국민적 여배우인가 생각해보면, 시대의 차이도 있고 프랑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문제도 연관이 됩니다. 통일된 뭔가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모타 시뇨레나 브리지트 바르도는 자신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라는 자각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 생각으로 바르도는 분명히 고립된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낭송을 할 수 없었으니까요. 프랑스에서는 바른 자세로 장 라신(Jean Baptiste Racine)을 낭송하는 것이 오랫동안 배우에게 요구되어 왔습니다. 매우 재능 있는 여배우이지만 국민적 여배우는 되지 못했고 본인도 그런 인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이토 시뇨레도 그렇고 바르도도 전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여배우에게는 국민적 여배우가 되고 싶다 라던가, 자신이 국민적 여배우가 되었다 라는 식의 의식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모타 카트린느 드뇌브는 어떨까요. 80년대 이후의 드뇌브를 보면 극좌파인 필립 가렐(Philippe Garrel)의 『밤의 바람』에 출연하는가 하면, 식민지화 예찬으로 보이는 『인도차이나』에 출연하여 프랑스의 삼색기를 배경으로 연설을 합니다. 최근의 활약을 보면 프랑스 문화대사로서 일본의 프랑스 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적어도 자신의 뒤에 국가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이토 그렇다고 『인도차이나』가 국민영화인가 하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벨 강스(Abel Gance)의 『나폴레옹』과 장 르누아르(Jean Renoir)의 『라 마르세예즈』가 국민영화인지도 의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국민적’이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프랑스 여배우라는 이미지의 원형이 된 것은 비비안느 로망스와 아를레티, 에디트 피아프와 같은 느낌의 여성입니다만, 그녀들을 국민적 여배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에디트 피아프가 배우였다면 국민적 여배우라고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요모타 그녀들은 결국 로컬적인 프랑스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프랑스에서는, 만약 어떤 시기에 국민적 여배우가 성립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로컬적인 여배우로 머물렀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EU 안에서 국민적 여배우는 성립할 것인가
요모타 이탈리아를 보자면 대외적으로 이탈리아 이미지를 어필한 사람은 소피아 로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지지하는 것은 나폴리 사람들입니다. 토리노나 밀라노 사람들은 ‘천박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할 것입니다. 어떤 도시를 대표하는 여배우는 있습니다.
사이토 이탈리아는 프랑스 이상으로 나라가 나뉘어 있으니까요. 이를 통합하는, 예를 들면 토토(극장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탈리아 배우)에 필적하는 대여배우는 누구일까요.
요모타 해외에 내놓을 때 ‘바로 이 사람이 이탈리아 배우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있습니다. 한 시기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laudia Cardinale)도 그렇습니다.
한편 나스타샤 킨스키는 독일인이지만, 타비아니 형제의 이탈리아 영화 『밤에도 태양이』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원작은 러시아의 톨스토이였습니다.
사이토 그녀는 프랑스 영화에도 출연했지요.
요모타 유럽 안에서는 킨스키가 유대인을 연기하든, 러시아인을 연기하든 개의치 않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경우 누가 어느 나라 여배우인가 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국민적 여배우는 지극히 로컬적이고 친근한 느낌이 아니면 성립하기 어렵겠지요.
이시자카 특히 EU가 된 후에는 영화 한 편의 ‘국적’ 그 자체가 매우 애매해졌습니다. 그래서 국민적 여배우가 성립되기도 상당히 힘들어졌습니다.
아시아에서 국민적 여배우를 말하기가 쉬운 것은, 오락영화 대 예술영화라는 긴장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굉장히 많은 오락영화가 있고, 이에 반발하고 고립하면서 예술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긴장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유럽보다 알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요모타 예를 들면 볼리우드(Bollywood, 인도의 뭄바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대중적 오락영화)와 사타지트 라이(55년작 ‘대지의 노래’ 등으로 알려진 인도 영화사에 남을 명감독)의 관계입니다.
이시자카 그렇습니다.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로컬 영화의 세계에 들어가면 국민적 여배우의 모습이 쉽게 보입니다. 유럽은 오락영화 대 예술영화라는 긴장관계가 아시아나 아랍 만큼 강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사이토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아랍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여가수=여배우들
이시자카 아랍권을 얘기하자면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니까 영화는 어디서나 유통될 수 있습니다. 상업영화의 중심에 이집트가 있고 이를 위성적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주변 국가들이 예술영화를 만들어 대항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집트에는 국민적 여배우가 몇 명 생각이 납니다(본지 38쪽 참조). 흥미로운 것은 움므 쿨숨(umm kulthum)처럼 여가수=여배우라는 형태를 취하는 경우입니다. 전설적인 가수이면서 배우인 그녀는 이집트를 넘어 범아랍권의 히로인이 됩니다.
요모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집트의 국민가수이고 국민적 여배우라는 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있습니다. 국왕 생일에 노래를 부르고 이집트 독립기념식에서 나세르 앞에서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시자카 현재의 인기 가수라면 파이루즈(Fairuz)를 들 수 있습니다. 그녀도 범아랍적이라 할 수 있지요.
요모타 나타샤 아틀라스(Natacha Atlas)도 그렇습니다.
이시자카 맡은 역할을 보자면, 움므 쿨숨은 역시 가난한 여인 역할이 많았습니다.
요모타 부자에게 속아 아이를 낳고 고생하는 줄거리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아이젠 가츠라(愛染かつら)』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평전을 읽어보면 아주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노래를 잘해서 어린 시절부터 장례식에서 돈을 받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것이지요.
이시자카 이집트 주변 국가들의 예술영화는 시장도 작아서, 이를테면 시리아나 레바논의 국민적 여배우는 금방 떠오르지 않습니다.
요모타 반대로 이스라엘은 길라 알마고(Gila Almagor)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언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으니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뮌헨』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한 여배우인데 그녀 자신이 이스라엘의 건국 역사를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강제수용소에서 홀로 살아남았고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었으며,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는 내용의 책을 내고 낭독회를 열었으며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모로코 출신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판명되어 시끄러웠지요. 그래도 한때는 수용소 생존자의 딸이 여배우가 되었다고 모두들 응원했고 그녀 또한 그런 영화에 계속 출연했습니다.
문화학(cultural studies)은 미국의 국민적 여배우를 상대화한다
요모타 한편 미국을 생각해보면 국민적 여배우를 특정짓는 것은 어렵습니다. 국민적 여배우가 누구라고 말하면 20퍼센트가 넘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은 ‘백인이지 않느냐’고 할 것이고 히스패닉도 있습니다. 때문에 헐리우드의 경우는 국민적 여배우가 아니라 세계적 여배우가 되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마릴린 먼로가 미국을 대표한다고 하면, 아마도 먼로 추종자들은 미국 여성이 아니라 모든 여성을 대표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민족의 문제가 결부되므로 국가로서의 통합성 문제처럼 다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이토 민족을 영화 속에서 의식하게된 것은 비교적 새로운 일이지요. 30~40년대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상황은 어떻습니까.
요모타 물론 흑인들은 흑인 전문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백인인 매리 픽포드(Mary Pickford)를 자신들의 대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메타 레벨에 있는 국가이니까요.
이시자카 쉽게 알 수 있는 경우는 전쟁을 하면 여배우가 위문단으로 전쟁지역을 방문합니다. 비상시에는 아무래도 국가 국민이라는 의식이 표출됩니다.
요모타 예를 들어 제인 폰다는 자신이 미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을 대표해 반전 집회에 참석하면서 전세계를 다녔고 그 때 그녀는 분명하게 ‘미국을 구하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릴리언 기시(Lillian Gish)에서 시작하여 매리 픽포드, 루이스 브룩스(Louise Brooks)로 이어지는, 이른바 미국의 공식적인 여배우 역사는 이미 통용되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의 문화학에서는 그것이 일부 백인의 것이라고 상대화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중국인 여성 감독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어린 이소룡을 기용해서 멜로드라마를 찍었던 것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과 헐리우드를 대등하게 생각하는 영화관(映画観)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민적 여배우는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의 백인 중에서 매리 픽포드라는 테마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をちこち」제21호(Feb./Mar.'08)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