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1)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부터 다바이모(束芋)씨, 五十嵐太郎(이가라시다로)씨, 테사 모리스-스즈키씨의 수필을 본지에서 전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
다바이모(束芋)
아티스트
나는 ‘기동력이 있다’라든가 ‘여유롭게 제작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도 흉한 모습을 외부에 보이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모습을 제대로 감출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그건 분명 내 능력이 아니라, 곁에서 나를 도와 주시는 분들이 매우 유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달 홍콩에서 작품 전시를 했을 때, 솔직해야 한다는 것에 자신이 얼마만큼 집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 주변 분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 홍콩 전시에서는 전시 설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나와 큐레이터 사이에 존재했던 커다란 간극이 전시 준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일반적인 수준을 넘는 문제였다.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메우기 위해 사전에 큐레이터와 가능한 많이 만나서 내 생각을 정성껏 설명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도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었고, 간극은 메워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와 나에게는 확실하게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막상 뚜껑을 열자 간극이 메워지기는커녕,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던 것이다. 사전에 알았다면 프로젝트 참가 자체를 포기했을 것이다.
크고 깊은 간극을 인정하면서도 그 폭을 가능한 좁게, 깊이는 가능한 얕게 만들기 위해 나는 현지에서 힘껏 작업을 한다. 주변 사람들까지 끌어들이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주최측과 언쟁하던 며칠간은, 지금까지의 제작활동 중에서 가장 가혹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시간을 거치면서 비로소 나는 자신의 집착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예술가가 되려 했던 것도 아니고, 미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열등감이 있었던 만큼, 남들보다는 내 집착이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모두가 기분 좋고 원활하게 작업하는 일’을 내던지고서라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을 갖고 있었다. 가혹한 시간을 함께 헤쳐 나가면서, 자신을 어느 정도 인정해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작업을 할 때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하지는 않지만, 울거나 약한 소리를 늘어놓고, 한참을 헤매거나 하는 일들은 늘상 하고 있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잊게 해줄 흥분이 있고, 보기 싫은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 무게를 헤아려보지 않았다. 지금, 그러한 무게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 뜻을 이해해주는 가까운 사람들의 정성스런 배려 덕분이다.
내가 무책임하게도 얄팍하다고 느끼고 있던 집착의 두터운 현실과의 차이는, 내가 얼마나 보호받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당연한 듯이 다정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앞으로도 솔직하고 싶다.
束芋『at the bottom(detail)』2007年 ⓒTabaimo / Courtesy of Gallery Koyanagi
「をちこち」제23호(JUN./JUL.'08)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