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4)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는 五十嵐太郎(이가라시 타로)씨의 수필을 전재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이가라시 타로(五十嵐太郎)


년 가을에 마닐라를 방문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반드시 들리는 장소 중의 하나가 국립박물관이다. 필리핀 국립박물관에서 감탄한 것은, 현대까지의 필리핀 건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다는 것이었다. 결코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필요 도면과 사진패널, 또는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서 대략적인 건축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필리핀의 건축여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20세기의 궤적을 포함하여 건축박물관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우에노의 국립박물관에도 건축사에 관한 상설전시는 없다. 다시 말해 일본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외국에서 찾아와도, 가장 먼저 안내할 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필리핀에는 있는데, 왜 일본에서 만들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필리핀은 이슬람, 스페인, 미국, 일본의 영향과 지배로 인하여 중층적(重層的)인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건축과 도시에도 나타나 있다. 그러나 마닐라만에 면한 말라테지역 남서부의 매립지에는 문화센터와 국제회의장 등 약간 느낌이 다른, 모뉴멘털한 건축물들이 들어서있다. 이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여사의 주선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평론가인 데이안 수직에 따르면, 그녀는 구두에 대한 열정과 비슷할 정도의 열심으로 랜드마크가 될 건축을 수집했다. 게다가 그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필리핀인 건축가 레안드로 록신 한 사람에게 의뢰했다. 미국에서 사리넨과 폴 루돌프에게 사사하고, 모뉴멘털한 디자인을 공부한 인물이었다. 그는 국가적 예술가로서, 전술한 두 시설 외에도 민속예술극장, 국립예술센터, 국제무역전시센터, 플라자호텔, 그리고 오사카 박람회의 필리핀관도 설계하였다.

 특징적인 건물은,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좋아했던 신고전주의 풍미를 가미한 현대건축인 문화센터(1969)이다. 장식 없이 무표정한 직육면체의 거대한 볼륨이 공중에 떠있고, 양측면에서 연못을 감싸듯 다이나믹한 슬로프가 이어진다. 다시 말해 건물 정면에 광장이 있어야 할 곳은, 연못의 수면이 펼쳐져 있고 바로 뒤는 도로이기 때문에 민중들이 모일 장소가 없다. 독재정권의 특유의 건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공간구성의 공공시설이라면, 바로 앞에 광장을 설치할 것이다. 마르코스 정권은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현재에도 거대건축물 주변에는 사람그림자가 없이 텅 비어 있었다.
 


 


「をちこち」제24호(AUG./SEP.'08)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