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5)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는 테사 모리스-스즈키씨의 수필을 전재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테사 모리스-스즈키
호주국립대학 교수


와 일본의 첫 인연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나는 대학생 시절에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다. 러시아어를 선택했었다. 나의 아버지는 영국 외무성 관료이셨다. 그래서 별다른 문제의식도 없이 외교관이 될 생각이었다. 대학을 졸업했을 때, DIPLOMATIC SERVICE에 들어가기에는 나이가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1년 동안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런던의 빅토리아역 가까이에 있는 환경성의 직원이 되었다.
당시는 영국이 공동시장(EC=현재의 EU)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려던 때였다. 영국과 EC회원국 사이에 기준을 통일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여기에서 한가지 고백을 한다면, 여러분들이 여름 방학에 EU 각국을 방문하여 한입 사이즈 초콜릿을 먹는다고 합시다. 그 초콜릿의 크기를 결정한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웃음).
스무살 신참으로서는 꽤 책임 있는 일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한입 사이즈 초콜릿의 크기를 결정하고, 다음에는 보리새우의 규격을 결정하고, 그 일이 끝나면 맥주병 크기를 통일하는 작업을 한다. 물론 그런 일들이 필수 불가결한 일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런 업무를 반복하는 사이에 지위가 올라가고 권력도 갖게 된다. 아무래도 그런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관료생활을 시작한지 10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이러한 고민을 직접 상사에게 털어놓았다. 그 때 나눈 대화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정확하게 재현해 보자.

“나도 처음 1년 동안은 관료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었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셨어요?”

“글쎄, 아직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 근무하신지 몇 년 되셨어요?”

“올해로 18년째지”


상사는 18년 동안 계속해서 관료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환경이 좋고 나름대로 수입도 높은 안정된 직업이다. 그래서 그는 국가공무원을 그만두지 못했다.
오해가 없도록 말해 두자면, 이 상사는 매우 우수한 관료였다.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후에는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친 후에 화이트홀(런던의 관가)을 용퇴했다.
그래도 당시의 젊은 나는, 그 상사의 모습이 자신의 18년 후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젊다는 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환경성에 사표를 제출했다. 사표를 받아 든 상사의 슬픈 듯한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환경성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갔다. 첫번째 이유는 ‘공해 선진국’이었던 일본에서 공해를 연구하기 위하여.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をちこち」제24호(AUG./SEP.'08)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