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8)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는 테사 모리스 스즈키씨의 수필을 전재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
테사 모리스 스즈키
호주국립대학 교수
내가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은 것은 1973년 11월이었다. 그 해 10월에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고, OPEC에서 원유생산 감축을 결정하면서 최초의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도쿄에 도착한 나는 시모기타자와에 아파트를 얻었다. 월동준비를 위해 석유스토브를 구입했는데, 연료가 되는 등유를 구할 수가 없었다. 가게에 사러 가도 ‘단골 고객에게만 배달을 합니다’라며, 팔지 않았던 것이다.
‘광란의 물가’라는 제목이 신문의 지면을 연일 장식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슈퍼마켓 선반에서 세제와 휴지가 사라졌다. 매점매석의 결과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 어떤 정유회사의 경영자가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사내에 격문을 돌렸다고 보도되었다.
발 밑에서부터 추위가 스며드는 도쿄의 겨울 밤을, 외풍이 들어오는 2층짜리 목조 아파트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떨면서 보냈다.
지금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당시의 시모기타자와는 역 앞에 작은 상점가가 있고, 상점가를 빠져 나오면 목조로 된 단층 건물이나 2층짜리 가옥이 계속 이어지는 동네였다. 이런 풍경은 시모기타자와만이 아니라, 예를 들면 도쿄역 주변, 신주쿠역 주변, 시부야역 주변 등, 특별한 지역을 제외하면 도쿄의 23구가 대체로 그런 분위기였다.
맑은 날, 도쿄타워에 올라 내려다 보면 짙은 회색빛 기와지붕이, 마치 바다 위에 새겨진 작은 물결처럼 보였다. 짙은 회색빛 기와지붕이 중간에 끊긴 곳은, 빌딩의 건설 공사가 진행중이거나 아니면 가까운 시일 내에 빌딩의 건설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건물이 이미 해체된 공간이다. 그 무렵의 도쿄는 가는 곳마다 밤낮으로 돌관공사를 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줄로 도쿄대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일본 초고층 빌딩의 선구적 건물인 가스미가세키빌딩의 가장 꼭대기층에서 열리는 영어회화교실의 강사 일이 나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36층 147미터 높이에서 가스미가세키 빌딩은 주위를 노려보듯이 서 있다.
그 영어회화수업의 학생들은 앞으로 해외에 파견될 예정인 대기업의 엘리트사원과 가스미가세키의 젊은 관료들이 대부분이었다. 휴식시간에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스모그로 칙칙한 도쿄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학생들과 잡담을 나눈다.
“이 건물은 벌써 5년이나 되었어요”
학생들 중 한 명이 무심코 던진 말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をちこち」제25호(Oct./Nov.08)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