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20)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는 테사 모리스 스즈키씨의 수필을 전재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

(호주국립대학 교수)

1년 전, 이 장마의 계절에 나는 일본에 있었다.


장마철의 도쿄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온이 높고 습도가 많아서 모든 유기물에 곰팡이가 피고 서서히 부패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계절에 일본에 간 것은 두 곳의 학회에서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두 학회 기간 사이에 나는 도쿄에서 벗어났다. 호쿠리쿠신칸센으로 우에다에서 내렸다. 목적지는 우에다에 있는 ‘무언관(無言館)’이었다. 건물 설계는 마치 유럽의 수도원을 연상시킨다. ‘무언관’은 1997년 5월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전몰화 학생 백 여명의 유작을 모아놓았다.

 

나부의 그림이 있다.

 

‘살아서 돌아오면 반드시 이 그림을 계속 그릴거야’

 

도쿄미술학교 유화과를 조기 졸업 당한 히다카 야스노리(日高安典)는 모델을 서준 애인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입대했다. 1945년 4월19일, 루손섬 바기오에서 전사. 향년 27세.
단란한 가족을 그린 그림이 있다.
이자와 히로시(伊澤洋)의 작품이다. 1939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 41년 보병 제66연대에 입대하여 만주, 홍콩, 라바울, 뉴기니아, 라에로 옮겨 가며 싸웠다. 43년 격전지였던 동부 뉴기니아의 카미아담 고원에서 전사. 향년 26세.
도치기에 있는 생가의 마당에는 히로시를 도쿄미술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내다판 느티나무의 그루터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가련하지만 아리따운 들백합 그림이 있다.
작가는 마스다 다카오(益田隆雄). 1943년 다마제국미술학교에 입학. 다음해인 44년 이 대학은 전황 악화로 폐쇄. 소집되어 만주로 출정. 패전 후인 46년 2월, 관동 제56 육군병원에서 병사. 향년 21세.

 

여기에서 작품의 완성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한 재능들이 전쟁으로 인해 벌레처럼 말살되었다. 미술관 실내는 정적이 지배한다. 그림에서 다음 그림으로 이동할 때 내는 작은 발소리 조차 높이 울린다. ‘무언관’. 말이 없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뜨겁고 그리고 강인한 것이었다.

 

친분이 있는 편집자의 자동차로 모치즈키마치(望月町)로 향했다. 모치즈키마치는 에도시대의 나카센도에 있던 역참 마을이다. 도쿄의 탁한 공기와는 확연히 다른 고지의 공기는, 비가 그친 후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웠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도 들려오지 않는다. 가끔 들려오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물까치 소리일까. 울창한 삼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날은 가스가 온천에 묵었다. 온천물에 잠겨서 밤하늘을 바라보니 비구름 사이로 상현달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をちこち」제29호(June/July,09)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