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21)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는 다바이모씨의 수필을 전재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다바이모

(束芋/아티스트)

 

 

 

 

 

 

 

 

 

 

 

 

 

 

 

다바이모 「악인(悪人)」으로부터 2006 ~07년
ⓒTabaimo/Courtesy of Gallery Koyanagi

 

‘감사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에게 항상 들었던 말이다. 얼마 전에 연출가인 동년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세대들은 감사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그 친구는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때 처음으로 나도 이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감사는 좋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는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매일 세끼 식사를 먹을 수 있는 데에 감사해야 하며, 약간의 피부 질환이 있다 하더라도 부족한 곳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감사의 끝간 곳은 대체 어딜까.


‘나는 ○○에 비해서 좋은 상황에 있으니까 감사한다.’ 어릴 때에는 아직 어린 생각으로 항상 이러한 ‘감사의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감사해야 한다’고 하실 때마다 그런 ‘감사의 방법’을 되풀이했고, 이제 나는 내 스타일로 감사를 하는 데는 도가 텄다.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도 이러한 어린 생각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고 의문도 갖지 않았으며, ‘좋은 일’로서 내 안에서 상당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신에게 감사한다. 신도(神道)의 삼라만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이해한다는 것은 턱없이 경험이 부족하다. 매일 세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은혜라는 것을, 부모님이 슈퍼에 진열된 채소를 돈과 교환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채소를 키우고 수확하는 과정은 우리의 대리인들이 해준다. 우리들은 그에 걸맞은 다른 일을 해서 그 노동을 공동의 통화인 돈으로 바꾸고, 그 돈을 우리들이 살아가기 위한 음식으로 바꾸게 된다. 대자연에 감사하기에는 대자연이 너무 멀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신에게 감사한다’라는 전혀 의미가 불분명한 말들로 정리해버렸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에 비해 얼마간 행복한 내 자신도 ‘신의 덕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종교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수상쩍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일까. 본인이 만들어낸 수상쩍은 신, 그 신에게 감사할 것을 강요 받아왔다는 느낌. 자연 속에서 살기 시작하자 얽혀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감사의 대상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자신보다 불행한 대상을 필사적으로 찾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비뚤어져 있던 사고가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をちこち」제30호(Aug/Sep,09)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