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고치 산책 (21)
<오치고치>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이 격월로 출간하고 있는 일본 유일의 국제교류전문지로, 이번 호는 다바이모씨의 수필을 전재합니다. 여러분의 애독을 기다립니다. |
(束芋/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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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에게 항상 들었던 말이다. 얼마 전에 연출가인 동년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세대들은 감사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그 친구는 이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때 처음으로 나도 이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감사는 좋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는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매일 세끼 식사를 먹을 수 있는 데에 감사해야 하며, 약간의 피부 질환이 있다 하더라도 부족한 곳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감사의 끝간 곳은 대체 어딜까.
‘나는 ○○에 비해서 좋은 상황에 있으니까 감사한다.’ 어릴 때에는 아직 어린 생각으로 항상 이러한 ‘감사의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감사해야 한다’고 하실 때마다 그런 ‘감사의 방법’을 되풀이했고, 이제 나는 내 스타일로 감사를 하는 데는 도가 텄다.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도 이러한 어린 생각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고 의문도 갖지 않았으며, ‘좋은 일’로서 내 안에서 상당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신에게 감사한다. 신도(神道)의 삼라만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이해한다는 것은 턱없이 경험이 부족하다. 매일 세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은혜라는 것을, 부모님이 슈퍼에 진열된 채소를 돈과 교환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채소를 키우고 수확하는 과정은 우리의 대리인들이 해준다. 우리들은 그에 걸맞은 다른 일을 해서 그 노동을 공동의 통화인 돈으로 바꾸고, 그 돈을 우리들이 살아가기 위한 음식으로 바꾸게 된다. 대자연에 감사하기에는 대자연이 너무 멀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신에게 감사한다’라는 전혀 의미가 불분명한 말들로 정리해버렸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에 비해 얼마간 행복한 내 자신도 ‘신의 덕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종교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수상쩍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일까. 본인이 만들어낸 수상쩍은 신, 그 신에게 감사할 것을 강요 받아왔다는 느낌. 자연 속에서 살기 시작하자 얽혀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감사의 대상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자신보다 불행한 대상을 필사적으로 찾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비뚤어져 있던 사고가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をちこち」제30호(Aug/Sep,09)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