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심철종 (씨어터제로 대표)
지난 2월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원형극장에서 개최된 <제15회 한일 댄스페스티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잠깐 해보기로 하겠다. 작년 12월초, 일본의 기획팀에서 한국팀(당시 행사에는 한국 6팀, 일본 4팀이 참가했다)의 구체적인 공연자료를 요청해 왔다. 무대와 조명플랜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각 무용가들에게 전화해서 자료를 받아 일본으로 전송했다. 며칠 후 잘 받았다는 답신과 함께 무대장치나 소품에 대해서 질문표가 다시 왔다. 질문내용은 한국팀 중 바텐에 밧줄을 거는 팀이 있는데, 밧줄이 걸리는 위치와 색깔, 길이, 재질 등을 묻는 것과, 물을 사용하는 팀은 현지 사정상 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또, 무대에 작은 단을 놓는 팀이 있는데 그 위치는 정확히 어디인가를 그림으로 표시해서 보내달라는 등의 아주 구체적인 것이였다. 중요한 내용도 있었지만, 지나치리만큼 아주 세세한 질문이였다. 사실, 한국에서 한번 공연했던 작품들이여서 공연테잎도 다 보내준 상태였고, 아오야마 원형극장이 반원형의 무대라서 그러한 무대를 처음 접하는 무용가들에게는 정확한 위치를 잡는다는 것이 매우 힘든 상황이였다. 이러한 사실을 일본기획팀에게 전했지만, 그들은 집요(?)하고도 끊임없이 보다 더 구체적인 자료를 요청했다. 결국, 그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모두 보내주었지만, 어차피 현지에서 수정될거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조금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였다. 하지만,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 나의 짜증은 차츰 고마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들은 보다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고,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 까지도 만들어 주었다. 물을 사용할 수 없어서 그 장면을 포기하려 했던 팀에게는, 영상팀을 준비해서 영상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그 효과가 직접 물을 사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좋았다. 또한, 바텐에 거는 소품들의 경우에도 극장에 맞는 위치를 미리 생각해 두었다, “여기 이 정도 높이가 더 좋지 않겠냐”는 식으로 제안해 주기도 하였는데, 그 또한 관객입장에서 볼 때 훨씬 좋은 것이였다.
그리고, 일본 스텝들의 무대 뒷처리도 나를 놀라게 했다. 한국팀 중 마지막에 반짝이를 사용하는 팀이 있었는데, 혹시라도 반짝이가 날려 다른팀에게 지장을 줄까봐 그 공연자가 무대에서 분장실까지 가는 길에 비닐을 깔아두고, 분장실 안에도 천으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서 모든 반짝이를 털고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것이다. 또, 공연이 끝난 후에도 조명, 무대, 음향 등 10여명의 스텝들이 모두 달려들어 무대 위에 떨어진 반짝이를 한시간여 동안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제거하는 것이였다.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많은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해온 나에게도 감탄스러울 따름이였다.
마지막으로, 일본 스텝들의 책임감과 성실함이 있었다. 당시 행사에서는 극장측 조명감독과 무대감독이 아닌 프리랜서를 투입해서 공연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극장측의 조명과 무대감독이 리허설과 공연 때는 물론이고, 셋업할 때에도 잠시도 무대를 떠나지 않고 지켜보면서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직접 관여하는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본다거나, 사무실에서 편히 쉬다가 필요할 때에만 와도 되는 일이였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모습들이지만 요즘 한국의 공연장에서는 많이 퇴색된 모습이 아닐까? 어쨌든, 이번에 일본 스텝들의 무대를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모습은 자칫 안일하게 바뀔수도 있는 나에게도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아마도 그러한 힘들이 모여 일본을 세계적인 나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