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민병찬(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내가 처음「正倉院展」을 본 것은 1998년이다. 물론 그 전부터 무척 전시를 보고 싶었지만, 일년에 딱 한번, 그것도 2주간이라는 짧은 展示期間으로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98년도에 일본국제교류기금의 펠로우쉽 프로그램으로 6개월간 日本에 체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때마침「正倉院展」이 開催되어 잔뜩 기대하고 東京에서 奈良까지 不遠千里하고 한걸음에 달려가 보았던 적이 있었다. 展示場은 많은 人波로 붐볐고, 여기저기서 ‘素晴らしい(스바라시이:훌륭해)’라는 感歎詞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기대했던 것만큼 큰 感動이 없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큰 失望을 하였다. 전시 마지막 날이라 많은 인파로 인해 전시품 앞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도, 한 전시품을 자세히 관찰할 수도 없었던 관람환경도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전시되어 있는 유물이 내가 기대했던 명품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은 당시를 대표하는 최고 품격의 보물들임을 익히 알고 있기에, 당연히 正倉院展에 전시된 유물도 모두 명품 일색일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명품이외에, 그 옆에 그것을 쌌던 보자기, 그 옆에 묶었던 끈, 그 옆엔 그것을 담았던 상자 등이 순서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결국 전체 전시장에는 실제 명품이랄 수 있는 유물은 삼분의 일 정도였고, 나머지는 보관했던 상자나 포장재였다. 또한 전시품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관람객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유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평상시 볼 수 없었던 왕실의 보물을 직접 實見했다는 사실 자체에만 매료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단순히 전시회의 관람 차원이 아니라 유물을 숭배하는 신앙의 차원에서 감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正倉院展을 처음 관람한 이방인에게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며칠 후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대학생(그 학생은 박물관과 전혀 무관한 분야을 공부하고 있었음)과 대화를 나누던 중 正倉院展이 잠시 주제로 등장하여, 전시에 대해 물어 보았더니 서슴없이 너무나 훌륭한 전시였고,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대답했다. 어디서 그렇게 큰 감동을 받았냐고 물었더니, 학생 曰 '고등학교 역사책에서 배웠던 보물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감격했어요'라고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결국 正倉院展은 신앙의 대상, 혹은 교과서에서 본 것을 확인하는 일본사람만의 잔치에 불과한 것일 뿐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전시회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正倉院展은 단순한 전시의 의미를 뛰어넘어 일본의 문화를 몸으로 직접 느끼게 해준 산 교육장이었으며, 서로의 문화에 대해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게 해준 통로였다. 나아가 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가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세계인 모두의 것이며, 문화재에 있어서만큼은 내셔널리즘(Nationalism)과 코스모폴리탄이즘(Cosmopolitanism)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