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필동 (세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필자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문적ㆍ사상적ㆍ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은사님이 세분 계신다. 그 중에 한분인 야스마루 요시오(安丸良夫)교수, 현재 히토츠바시(一橋)대학의 명예교수인 그는 전후 일본사상사연구를 선도해온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마루야마(丸山眞男)사상사로 대표되는 전후 일본사상사 연구영역이 지나치게 지배사상의 분석에 경도되어 있어 민중사상이나 햐쿠쇼잇키(百姓一揆) 혹은 자유민권파의 사상과 같은 ‘민중의 제사상’이 평가 절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배이데올로기나 일본사회에 있어서의 전통적인 의식형태가 분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사상사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대표적인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사상사연구의 중핵을 지배사상 연구에서 민중사상 연구로 이행 내지 확대시키며, 특히 근대사회성립기에 있어서의 민중사상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그는 자신의 민중사연구의 의의를 1) 일본의 근대화를 그 최기저부(最基底部)로서 떠받친 민중의 에너지를 광범한 민중의 내면성을 통해서 파악하기 위해, 2) 근대일본의 이데올로기 구조의 전체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즉 민중의식의 내재적 파악을 통해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내재적 분석을 행한다는 의미), 3)민중의 전통적 일상적 세계에 밀착하면서 게다가 그것을 극복해 가는 진짜「토착적」인 사상형성의 가능성을 밝히는 것 등에 있다고 규정하면서, 민중의 토착적인 전통사상의 본질을 정체적인 것으로 매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역사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창조적인 ‘민중사상’으로 재조명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야스마루의 참신한 문제의식은 전후 사상사연구의 기념비적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는『日本の近代化と民衆思想』(1974)을 필두로『出口なお』(1977),『日本ナショナリズムの前夜』(1977),『神々の明治維新』(1981),『一揆ㆍ監獄ㆍコスモロジ-』(1999), 그리고 전후 사상을 비판적으로 총괄하면서 역사학의 과제와 가능성을 전망한 최근작『現代日本思想論』(2004)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구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평가와 함께 전후 역사학계에 신풍을 불어넣었던『日本の近代化と民衆思想』은 그의 대표작이자 야스마루의 역사관과 사상사연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근세 중ㆍ후기부터 메이지(明治)에 걸쳐 광범한 민중들이 수미일관한 자기규율을 수립하려 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근면ㆍ검약ㆍ정직ㆍ효행이라고 하는 ‘통속도덕’의 논리로 조명함으로써 민중사상의 다양성을 일관된 기본성격과의 관련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파악한 최조의 연구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야스마루에 의하면 일본 근대사회에 있어서 가장 일상적인 생활규범이었던 통속도덕은 역사의 특정 발전단계에 있어서는 광범한 민중의 자기형성ㆍ자기해방의 노력이 담긴 역사적ㆍ구체적 의식 형태이고 나아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유교도덕을 통속화하면서 촌락지배자층을 통해 일반 민중에까지 하강화시켰다고 하는 규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통속도덕은 근대 일본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갖가지 곤란이나 모순을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기도 하였고, 또한 통속도덕의 실천이라고 하는 광범한 민중의 자기단련․자기해방의 노력과정에서 분출된 비대한 사회적ㆍ인간적 에너지는 사회질서를 밑에서부터 재건하는 역할을 다한, 이른바 일본근대화의 원동력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통속도덕은 극도로 유심론적인 것이기 때문에 대상적 세계의 객관적 인식이나 사회 변혁에 있어서는 미력할 수밖에 없고, 모든 곤란이 자기변혁ㆍ자기단련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하는 모순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허위의식의 침투는 통속도덕을 자명의 전제로 받아들여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사회의 원축(原蓄)과정에 있어서 몰락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사상적 도덕적으로 마저 패배감을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자기형성ㆍ자기규율의 노력이 체관이나 니히리즘으로 전락해 가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 요지이다.
근대사회형성기에 있어서 특유의 사회의식 형태로서의 동속도덕론의 제창은 다양하고 혼돈한, 그리고 미숙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유의 연구영역과 공통의 분석방법론을 갖지 못했던 종래의 민중의식의 분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 봉건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쉬웠던 민중의 의식 속에 일본근대화의 원동력이었던 광범한 민중적 에너지를 발견하는 성과를 낳으면서「전후의 일본사상사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민중사상사연구의 방법론의 단련과 주옥같은 연구 성과를 통해 민중의식의 형태를 체계적으로 밝혀내고 민중사상의 내적 변혁과정을 역사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이는데 일생을 바친 그의 학문적 자세와 연구 성과는 오늘날 필자의 일본사상사연구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