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진창수(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국제사회에서 바라보는 일본외교는 상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인식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일본이 경제대국이긴 하지만 정치안보분야에서 국제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 인식은 전후 일본이 헌법 9조에 발이 묶여 ‘일국평화주의’를 고수함으로써 국제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강조하는 국가들은 일본이 국제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 하나의 인식은 궁극적으로는 핵무장을 포함해 일본이 군사대국화로 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인식은 중국이나 한국에서만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회의 등에서도 일본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주장을 시작하게 되면 그 때까지 존재감이 약했던 일본은 없어지고, 일본의 위협론에 대한 논의가 열기를 뿜기 시작한다. 일본의 보통국가론이나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보장논의는 결국 헌법개정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제되면서 이것은 극단적으로는 전전의 군국주의화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오늘날 일본 외교의 모습은 이러한 이중적인 이미지의 중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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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미들파워외교』 |
이러한 일본의 이중적인 태도를 소에야 교수는 ‘미들 파워 외교’로서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소에야 교수는 일본외교가 대국을 지향하는 전전의 국가주의와 헌법 9조에 볼 수 있는 평화주의 외교를 지향하는 두개의 상반된 정치 세력의 갈등에 의해 진행되어왔다고 보고 있다. 이 두 세력의 갈등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오해를 불러와 일본 외교의 발목을 잡아왔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 내 두 정치세력의 갈등은 양자의 균형을 잡아 나가는 식으로 일본외교의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것이 일본의 외교 전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소에야 교수는 전후 일본외교의 실상은 ‘미들파워 외교’였으며, 이를 출발점으로 앞으로의 일본외교 구상을 그려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에야 교수는『일본의 미들파워외교』(치쿠마신서, 2005)에서 국제사회에서 파워라는 것은 정치현상에 영향을 주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영향력을 말한다. 거기에는 ‘슈퍼파워’, ‘그레이트 파워’, ‘미들파워’, ‘스몰파워’의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일본어로는 ‘슈퍼파워’가 ‘超大國’, ‘그레이트 파워’는 ‘大國’, ‘미들파워’는 ‘中級國家’, ‘스몰파워’는 ‘小國’으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자의 두 가지는 일본어로서도 개념파악이 용이하지만 후자의 두 가지는 그렇지 않다. ‘미들파워’도 ‘스몰파워’도 무언가 영향력을 가진 파워이지만 ‘中級國家’나 ‘小國’과 ‘大國’ 사이에는 갭이 크다는 것이 느껴진다.
‘大國’과 ‘미들파워’의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은 물리적인 국력의 차이보다는 힘을 어떻게 영향력으로 전환 시킬 수 있느냐에 있다. ‘大國’은 군사력을 최종적인 수단으로 자국의 역사관, 가치관, 이익을 억지로 강요하는 외교방식을 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 ‘미들파워’는 일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강대국과 같은 일국주의를 포기하고 강대국이 만들어 가고 있는 권력정치의 무대에서 한발 물러서 강대국 외교에는 본래 없는 영역 (예를 들어 다국간 협력)에서 그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들파워외교』에서 소에야 교수는 전후 일본외교의 실태가 이런 ‘미들파워’ 외교에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정치지도자나 그 대항세력들은 일본외교의 ‘미들파워전략’을 거의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인식에 따른 고정화된 대응만 되풀이 해 왔다고 소에야 교수는 비판한다.
냉전 시기에는 대국간 세력 균등 외교가 진행되고 있어 일본외교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좌우의 내셔널리스트들은 평화 헌법 9조의 고수와 미일 동맹 견지를 미일 종속이라고 공격했지만, 일본외교는 결국 전통적인 요시다 독트린으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이케다 내각부터 일본은 이전의 대국간 외교와는 다른 경제협력을 기둥으로 하는 다채로운 국제 협조 외교 정책을 취했다. 후쿠다 독트린, 인간의 안전 보장, 유엔 PKO. 이러한 정책들을 필자는 미들파워 외교로 보고 있다. 또한 나카소네 외교도 요시다 독트린에서 나타난 ‘대등한 일•미 관계’의 뒤틀림에 유래하는 ‘일•미 안보의 취약함’에 대한 위기의식으로부터 미일 안보조약의 재정의가 나타났다. 이후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입각한 한국ㆍASEANㆍ오스트레일리아 등 ‘미들 파워’국가들과의 제휴는 ‘동아시아 공동체’론까지 연결되었다고 보고 있다.
단지『미들파워외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미들 파워’와 ‘대국’ 의 차이는 끝까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 그것은 ‘핵무기’, ‘국가 의사’등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 같다. 소에야 교수는 유엔 상임이사국들 중에서 프랑스나 영국을 미들 파워 국가로 보고 이들 국가들을 일본외교의 모델로 삼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나 영국은 미들 파워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러시아와 중국은 대국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인도와 브라질은 대국일까? 아닐까?
비록 책에서는 미들 파워와 대국의 구분을 하고 있지만, 원래 ‘국제 협력=미들 파워’ 외교와 ‘단독=대국 외교’의 구분이 단적으로 쉽게 될까 하는 의문이 있다. 현재 중국의 다국간 협조 외교를 대국 외교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개념들이 별로 의미가 있는 개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미들 파워 외교와 대국 외교는 서로간의 연속성과 대립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많은 의문점들을 가지게 되지만, 현재 일본의 외교정책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의 일본의 외교정책의 고민이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