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한국국립현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과 공동 주최로「아시아 큐비즘」전을 2005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국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는데, 상기 3개 미술관이 공동 기획하여 2년 3개월의 준비기간과 4차례의 공동조사여행을 바탕으로 엄선된 아시아 국가들의 근대기 회화작품으로 꾸며진 대규모 전시회이다.
본 전시회의 기획단계부터 한국측 담당자로서 참여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의 김인혜 학예연구사(사진)를 만나, 전시회에 관한 여러가지 회고를 들어본다.

 

1. 이번에 아시아 큐비즘 전시를 열게 된 동기가 있다면?
처음에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같이 해보자는 발의를 해 왔어요. 아마도 기금 쪽에서는 아시아 관련사업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여서, 좀 더 도약적인 발전을 위해 공동 기획사업을 구상한 것 같았습니다. 아시아 연구라는 것이 각국별로 진행되고 있어서, 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작업은 공동진행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섭외가 들어왔을 당시 저희 미술관에서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공동”이라는 것을 축소된 의미로 그저 전시만을 하는 장소로 할지, 아니면 아주 처음부터 같이 적극적으로 준비ㆍ기획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요. 저희 쪽에서는 정말 제대로 된 공동 프로젝트를 하려면 아주 처음부터 함께 참여해서 리서치 및 큐레이터리얼 작업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고, 기금 쪽에서도 그것을 원했어요. 결국 후자의 방향으로 개념을 잡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회고하기를 한국에서 제일 먼저 OK를 해줘서 굉장히 자극받았다고 하더군요.
실은 처음 큐비즘 이라는 말에는 별 매력을 못 느꼈구요(웃음), 아시아 국가들이 같이 하는 작업이고 큐비즘이 근대 모더니즘의 일환이기 때문에, 아시아 모더니즘을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본다, 또 아시아 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배운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요즘 “아시아”라는 게 하나의 화두잖아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처음 단계인 비공개 세미나부터 참여했어요. 보통 한국에서는 전시를 위한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프로젝트는 많이 달랐어요. 완전히 무(無)의 상태에서 유(有)를 만드는 과정을 밟아 나가는, 전시는 이런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이런 과정들을 통해 얻은 것이 참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2. 이번 전시는 "큐비즘"을 아시아의 각 나라가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알고 있는데, 출품된 나라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사실 다른점 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았지요. 기획 초기에 차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라마다의 특성을 무시하면 오히려 위험한 발상이 된다고 생각하여 차이점을 보려고 애썼지만, 이상하게도 공통점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아시아 근대미술의 과정, 경로, 작품 연대, 아니면 특성들이 너무 일치해서 돌아가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작품들이 대부분 1950년대에 집중되는 게 공통점 중 하나인데요, 1930년대에 국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도시들, 도쿄, 상하이, 봄베이 같은 곳에서 일찍 큐비즘 경향이 나왔거든요. 또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하는 나라들이 생기면서 나온 현상들이 미술사적인 경로와 상호 작용하면서 가는 걸 볼 수 있어요.
물론 나라별로 섬세하게 차이점은 있지요. 예를 들어 기독교 나라에서는 기독교적인 내용이 많다던가, 이민 세대들에 의해 정착된 스리랑카의 경우에는 40년대 이후에 큐비즘 경향이 나타난다던가 하는 점이요. 또 유럽과 비교하자면, 아시아의 큐비즘이 훨씬 더 서사적이고 감정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이번 전시가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3. 이번 전시 준비중에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지?
특별하게 어려웠던 건 없었습니다만, 이게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메일을 보내면 그에 대한 피드백이 여러 사람한테 오거든요.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을 보내고 받고 보내고 받고..그것도 영어메일을...2년 동안 그렇게 지내왔다고 생각해보세요(웃음).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 전시를 위한 준비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거든요. 아무래도 한국적 시스템과 좀 맞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힘들었다면 힘들었구요, 아, 또 하나, 조사여행 일정이 너무 타이트했어요!! 예를 들어 7박 8일 일정이면 2박을 비행기 안에서 하는 일정이었다니까요. 호텔은 짐 보관소일 뿐이고,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내내 조사하고, 회의하고 그랬습니다. 얘기하다 보니 하나 둘 씩 생각나네요(웃음). 하지만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각자 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일정이었어요. 그런 면에서는 알차고 참 좋았습니다.

 

4. 미술계에서는 교류사업이 매우 활발한데요, 미술 교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교류가 좋다 나쁘다 라는 본질을 따지기 전에 지금의 현상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현대 사회에서의 교류는 매우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 교류나 연대, 네트워킹을 하지 않으면 낙오되어 살아남을 수가 없잖아요.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교류 사업 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기관 대 기관이든, 국가 대 국가이든, 결국 교류는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하는 일에서 기본적으로 신뢰가 쌓여야만 내실을 다질 수 있지요. 서로를 보면서 다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교류는 계속 될 수 밖에 없구요.

 

5.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될런지요.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갖고 계신데요, 큐레이터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때가 언제시고, 또 큐레이터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이 있다면 어떤것인지요.
저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큐레이터 였어요. 지금은 큐레이터가 대중가요에 등장할 만큼 모든 분들이 아는 직업이지만, 제가 대학을 들어갈 때만 해도 큐레이터가 어떤 직업인지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큐레이터라고 생각 안해요(웃음). 음, 그런데 정말 제대로 된 큐레이터라면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분명 자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술사 공부만 잘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특히 근ㆍ현대를 다루는 큐레이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작품들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걸 즐기고 기대하며, 호기심을 없애지 않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한 자질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6. 업무차 외국에 나가실 일이 많으시지요?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가 있으세요?
제가 3년 동안 독일에서 공부를 했었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목적 없는 여행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뭔가 조금이라도 배우겠다고 생각하는 여행이 좋더라구요. 그래서 나라 자체보다는 목적하고 맞는 답사 여행을 선호하기에, 어느 나라든 좋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일본이라는 나라는 저한테 있어서 전혀 관심 밖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전시회 준비를 위해 처음 가게 되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도쿄 간다(神田) 진보쵸(神保町)의 고서(古書) 서점가였어요. 이런 서점들이 밀집된 걸 보면서 일본의 지적 저력이 이정도 바탕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감동했어요. 그래서 그 후 일본에 갈 일이 있으면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치는 한이 있어도 거기를 꼭 가게 되요. 저에겐 매우 자극이 되는 곳이거든요. 이제는 일본에 많은 관심이 생겼고, 일본어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7.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덕수궁미술관의 계획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소정 변관식 전시회를 하고 있구요, 한국 근대미술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을 보는 인식의 변화 등을 주제로 하는「아이들이 있는 풍경전」이 이어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롭센&뭉크」전,「장뒤뷔페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뒤뷔페전을 맡고 있는데요, 한불 수교 100주년 기념 전시회입니다. 뒤뷔페 작품 초기부터 말년까지 전부 다 볼 수 있는 전시로, 미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덕수궁미술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