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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특한 문화 중의 하나에 “선물(오미야게)문화”가 있다. 주는 이와 받는 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소박한 행복을 전달하는 다양한 일본의 선물(음식,전통공예품)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
일본의 오미야게(선물)
레분섬산 염장성게와 도요하시 붓
주식회사 에스원 대표이사 부사장
가타야마 요리야스(片山頼康)
◆음식◆
【레분섬산 염장성게】
오늘 소개해 드릴 선물은 일본 최북단 섬인 레분섬(禮文島)의 소금에 하룻밤 절여서 만든 염장성게입니다. 일본어로 성게는 ‘우니(うに)’ 라고 하는데 재미있게도 성게의 상태에 따라 한자를 다르게 표기합니다. 읽는 법은 같지만 ‘海胆’는 살아있는 성게, ‘雲丹’는 속살을 꺼내 소금에 절인 성게를 뜻합니다. 자, 그럼 먼저 레분섬산 성게가 왜 좋은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홋카이도의 성게(海胆) 생산량은 일본전국의 50%을 차지하고 있으며, 어획시기는 일본해(동해)측은 5월∼8월, 오호츠크해측은 라우스(羅臼)가 2월∼5월, 오무•에사시(雄武•枝幸)는 4월∼6월, 에리모(襟裳)는 1월∼3월입니다. 홋카이도 중에서도 레분섬은 홋카이도 전체 어획량 중 20%을 차지하고 있어 레분섬의 어획량이 시장가격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레분섬의 성게(海胆)는 일본의 3대 다시마로 유명한 리시리(利尻) 다시마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최상급의 품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홋카이도 해면어업조정 규칙’을 통해 어획금지기간을 지정하여 철저한 자원관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더라도 성게와 리시리 다시마의 어획량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품질 유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자원관리의 부재로 인해 성게가 대량 발생해 해조류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고 합니다. 이는 결국 성게의 품질을 저하시켜 한국내 소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및 중국에서 수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한국에서 ‘성게 먹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셈이죠!
홋카이도의 고급 성게에는 ‘홍’이라 불리는 농후한 ‘에조바훈우니(말똥성게의 일종)’와 ‘백’이라 불리는 뒷맛이 담백한 ‘에조무라사키우니(보라성게의 일종)’ 2종류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면 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염장성게(雲丹)를 만들 때의 간 조절입니다. 레분섬의 염장성게(雲丹)는 숙련된 사람이 성게(海胆)의 상태에 따라 뿌리는 소금의 양을 조절해 최상의 맛을 내게 됩니다.
한국 분들께 소개할 염장성게(雲丹) 맛있게 먹는 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따뜻한 밥 위에 염장성게(雲丹)를 조금 얹어서 밥과 함께 드십시오. 이것이 염장성게(雲丹)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보통 한 병으로 4인 가족이 이틀 정도 드실 수 있습니다.
자, 여기서부터가 바로 ‘특별함’입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죠? 이 염장성게를 최대한 냉동에 가까운 상태로 한국까지 가져오는 것입니다. 홋카이도 오타루(小樽)의 시장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날 18시에서 21시 사이에 배송일을 지정해 냉동된 상태로 집으로 보내고 냉동실에서 출발 직전까지 보관합니다. 그리고 아이스박스에 보냉팩을 가득 채우고 한국 자택의 냉동실까지 가져오시면 됩니다. 또한 차로 이동할 경우는 되도록 차가운 바깥 공기에 노출하는 것이 좋으니 루프 캐리어에 싣고 운반하시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이렇게 하시면 충분히 특별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전통공예품◆
【도요하시 붓】
붓을 선물하고자 할 때, 아무래도 그 대상에 제한을 받긴 하나 한국에서도 서예를 즐기는 분이 꽤 있기 때문에 제법 그럴싸한 일본 선물 중 하나입니다. 제 아버지가 ‘가타야마 세겐(片山聖源)’이라는 이름으로 서예를 하고 있는 연유로 저 또한 어려서부터 서예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는 습득하고 있었습니다.
서예에 필요한 도구에는 붓•종이•먹•벼루•물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붓은 쓰는 사람의 마음을 글씨에 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이와 같은 붓이 선물로는 어떨지 망설이게 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서예를 하는 분들은 일단 붓을 써보면 어느 때 이 붓을 써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것보다 그들에게는 선물 받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일본에는 나라(奈良)현의 ‘나라 붓’과 아이치(愛知)현의 ‘도요하시(豊橋) 붓’, 그리고 히로시마(広島)현의 ‘가와지리(川尻) 붓과 구마노(熊野) 붓’의 3대 붓이 있습니다. 나라 붓은 당연히 나라시대에 탄생한 붓으로 가장 긴 역사를 지니며 나머지 붓들은 에도시대 후기에 탄생했습니다. 그럼 나라에서 붓이 탄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나라는 6개의 종파와 7개의 대찰이 존재하는 불교의 일대 중심지였습니다. 종교이면서 당시 최첨단 학문이기도 했던 불교를 배우기 위해 일본 전국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나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 활약한 것이 바로 붓이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중국에서 전해진 경전뿐만 아니라 연구서와 주석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적을 옮겨 적었는데, 주요 사찰에서는 나라에서 만든 붓을 사용했습니다.
사경은 7개의 대찰 등, 각 사찰의 승님뿐만 아니라 사경소라고 불리는 공적인 사경기관에서도 이루어졌으며 여기에 소속된 1000명을 넘는 사경사들은 방대한 양을 사경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대규모 수요에 부응하는 방대한 양의 붓과 먹, 종이를 공급하기 위해 정부는 중무성(中務省*1) 도서료(圖書寮*2) 에 붓•먹•종이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인력을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답니다. 이것이 오늘날 나라 붓의 기원입니다.
이런 나라 붓의 기법을 도입해 에도 후기에 제작된 붓이 구마노 붓의 기원입니다. 당시 구마노지역의 사람들은 지금의 와카야마(和歌山)나 나라로 돈을 벌어 나갔었는데 객지에서 번 돈으로 당시 인기상품이었던 나라의 붓이나 먹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팔았다고 합니다. 구마노에 도착했을 때에는 벌어들인 돈이 처음의 2배 이상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붓과 먹의 크기나 무게가 들고 다니기 적당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나라 붓의 기술을 구마노로 이전하려는 사람들이 나온 것입니다.
한편 도요하시 붓은 에도시대 후기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요시다(吉田) 번의 영주가 번을 위해 당시 수도였던 교토(京都)에서 붓 만드는 장인을 데려왔고 또 하급무사에게 부업으로 붓 제작을 장려한 것이 그 기원입니다.
오늘날까지 각각 그 전통기술과 기법을 이어가고 있는 3대 붓 중에서 굳이 제가 도요하시 붓에 한정한 이유는 도요하시 붓의 높은 생산량에 있습니다. 도요하시 붓 전체의 전국 점유율은 25%정도이지만 고급 붓의 경우 80%이상에 달합니다. 서예를 하는 한국 분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되도록 도요하시까지 직접 가셔서 구입하는 것이 다양한 상품을 접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습니다. 붓은 도요하시, 먹은 나라산을 추천합니다.
*1 옛날에 천황 곁에서 궁중의 정무를 통할하던 관청.
*2 국가의 장서를 관리하던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