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12회에 걸쳐 일본식 과자의 명가 虎屋(도라야)의 虎屋文庫 전문직과장으로 계신 中山圭子(나카야마 게이코) 선생님의「和菓子歲時記」를 연재합니다. 나카야마 선생님은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예술과에서 일본식 과자의 의장 등을 연구하였고 그 후 일본식 과자의 명가인「虎屋」에 입사, 현재는 虎屋文庫에서 일본식 과자 문화의 연구ㆍ보급을 위해 활약하고 있습니다.

6월 16일은 '일본식 과자의 날'. 그리고 嘉祥(가조)

6월 16일은 '일본식 과자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기억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 음력 이 날에는 嘉祥(가조)로 불리는 중요한 행사가 있었던 것에 연유하여 기념일을 정하게 되었다.

음력 6월은 더위도 본격화되어 병이라도 나기 쉬운 시기. 가조도 이런 더위를 피하기 위해 실시되었을 거라고 생각되어진다. 16일에 연관된 숫자나 금액의 과자를 먹는 풍습으로서 전해져 왔는데, 그 시초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는 궁중이나 무가에서 시작해 넓게 퍼져 민간에 침투해 갔다.
메이지시대 이후 가조행사는 폐지되어 버렸으나, 1979년 전국일본과자협회의 협의에 따라 '일본과자의 날'로 되살아났다. 그 이후 6월 16일에는 일본식 과자 캠페인이나 과자축제가 열려 가조만쥬나 가조과자가 판매되었다. 옛날 풍습 생각을 하면 과자를 음미하면서 더위를 극복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가조과자와 가조만쥬
미나즈키
6월을 대표하는 또다른 과자 水無月(미나즈키)
한편 6월의 행사에 관련된 또 하나의 과자로 水無月(미나즈키)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미나즈키란 일본에서는 6월의 또 다른 이름이다('미나즈키'의 '나'는 조사 '~의'의 뜻이다. 따라서 '물의 달'이라는 의미로 '밭에 물을 대는 달'이라는 뜻). 관동지방에서는 귀에 익숙치 않은 과자이나 교토 사람이라면 6월 30일인 夏越の祓い(나고시노하라이:6월 그믐날 하는 액막이 제)를 빼먹지 않는다. 쌀가루로 찐 삼각형의 과자에 팥을 뿌려놓은 아주 소박한 과자로, 6월이 되면 어떤 일본과자가게 앞이라도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더욱 잘 팔리는 날이 바로 30일이다.
水無月のなごしの祓へする人は千歲の命延ぶといふなり
- 拾遺和歌集
이 노래가 오랫동안 남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고시노하라이는 헤이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전통적인 행사다. 현재도 교토의 上賀茂神社, 北野天滿宮 이외에도 각 신사에서 이 제례가 행해져 식물줄기나 짚으로 만든 원을 빠져 나가거나, 종이로 만든 신주(위패)를 신사안에 있는 강에 띄워보내거나 한다.
미나즈키의 삼각형 모양은 신사 안의 강가 양쪽에 세워놓은 齊串(이구시:신성한 막대)의 공물을 보고 정했다고도 하고, 얼음을 표현했다고도 한다. 6월 1일에 얼음연회가 있어 얼음실의 얼음이 궁중이나 막부에 헌납되었다는 것에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삼각형의 유래 뿐만 아니라 팥을 많이 사용한 것에도 주목할만하다. 기운을 잃기 쉬운 여름철에 영양가 높은 팥을 먹는 것도 선조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嘉祥(가조)의 유래에 관한 재미있는 역사적 이야기

일찍이 일본식 과자가 주역인 행사가 6월 16일에 있었다. 그 이름을 嘉祥(가조)라고 한다. 기원은 헤이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나 정확하지 않다. 무로마치 시대 조정에서는 만쥬 등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또 무가(武家) 사이에서는 이 날에 양궁(楊弓:앉은채로 짧은 화살을 쏘는 놀이) 내기를 해서 진 사람이 승자에게 중국의 돈인「嘉定通寶(가조츠호)」16장으로 산 음식을 주었다. 중국 돈의「嘉(가)」와「通(츠)」의 자를 읽어서 나는 음(가츠:일본어로 승리라는 뜻)이 승리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여 무가에 숭상되어졌다. 이와 같은 일에 연유해 嘉祥는 嘉定으로도 쓰여진다.

1603년 에도시대에 막부를 연 德川家康(도쿠가와이에야스)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전쟁 없는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의 초석을 다졌다. 막부를 열기 이전인 1572년, 이에야스에게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甲斐(가이:현재의 야마나시현)의 武田信玄(다케다신겐)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당시 이세야스 군은 三方ケ原(미카타가하라:하마마츠시의 서방)에서 신겐의 군대를 맞아 織田信長(오다노부나가) 군과 동맹해 함께 싸웠다(미카타가하라의 합전). 결과적으로 대패했으나 반에도 못 미친 군력으로 열심히 싸워준 이에야스 군의 용감함은 상을 줄만했다. 이에야스로서는 이 전투가 기념할만한 대패전이었다.

이 전투가 있기 전, 羽入八幡(하뉴하치만)에 전승을 기원한 이에야스는 뒷면에「十六」이라고 쓰여진 嘉定通寶를 주운 후 미신에 사로잡혀서 신하인 大久保主水(오쿠보몬도)가 수제과자를 헌납한다. 이 고사에 연관된 嘉祥는 에도막부에서도 성대하게 행해졌다. 에도성 넓은 방의 다다미 500개에 2만개가 넘는 양갱이나 만쥬 등의 과자를 늘어놓고 장군이 친히 무사에게 수여했다. 원래 장군이 손수 과자를 수여한 것은 처음으로, 이후에 도중 퇴출되어 무사 스스로 과자를 짚게 되었다. 2대 장군인 秀忠(히데타다)까지는 장군이 친히 과자를 수여했다. 너무 많은 과자를 주었기 때문에 며칠간 장군은 어깨가 아팠다는 이야기도 있다. 덧붙여 이에야스에게 과자를 헌납한 오쿠보는 막부 후기의 관용 과자상이 되어 가조에 깊게 관계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 가조의 의식은 쇠퇴했으나, 1979년 전국 일본과자협회에서는 가조가 행해진 6월 16일을 '일본식 과자의 날'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실시해 오고 있다.

글과 사진을 제공해 주신 虎屋(도라야)와 나카야마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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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조양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