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본 센터와 문학동네 공동주최로 '히라노 게이치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내한 기간 중 한겨례신문사와 본 센터 공동주관으로 한국의 소설가 김연수 씨와의 대담을 마련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 세계와 공통의 관심사, 그리고 한-일 두 나라 관계와 문학의 역할 등을 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한겨례신문에 실린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소개한다.
김연수=당신은 지난해 일본 문화청의 문화교류사 자격으로 1년간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독일 정부 초청으로 올 8월부터 10월까지 석 달 동안 독일에서 지내다가 왔다. 2003년 12월부터 작년 8월 말까지는 중국에서도 한동안 지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럽과 중국 체류의 느낌이 조금 달랐다. 유럽과 아시아의 차이랄까. 유럽 사람들 중에는 두 나라 말 이상을 쓰는 바이링구얼(bilingual)이 많았다. 술집에서 여러 나라 말이 정신없이 난무하는 장면을 본 일도 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모국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한국인에게 언어란 소통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반면 유럽인에게 언어는 소통의 수단일 뿐이더라. 당신도 영어와 불어를 두루 잘 하고 유럽도 자주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유럽 체험이 작가로서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하다.
히라노=흥미로운 얘기다. 개인적 체험을 얘기하자면, 10년 전에 프랑스에 갔을 때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작년에 다시 가서 보니 영어를 잘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유럽연합(EU) 통합 때문일 테고, 이런 현상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어디서나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영·미의 영어와도 또 다른 ‘유럽연합의 언어로서의 영어’라는 것이 형성된 것이다. 최소한의 소통에 필요한 어휘와 문법으로 된 영어 말이다. 지역통합이 무엇보다 언어의 통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유럽연합이 굳건해지면서 거꾸로 각국의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모국어에 민감해지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 쪽의 이런 흐름과 연관지어, 한국의 작가들이 모국어에 대한 태도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듣고 싶다.
김연수=모국어에 대한 관심은 근대 국가의 형성과 관련이 깊다. 국사와 국어의 형성은 국민국가 만들기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식민지시대의 문학과 작가는 운동의 차원에서, 그러니까 국가 만들기라는 목표의식 아래 문학을 한 셈이다. 해방과 전쟁 이후로 오면 모국어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어서 별다른 의식이 있지는 않았다. 우리의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든 현실을 드러내는 표현법으로서 언어를 다룬다는 것이 전후문학의 핵심이었다. 모더니즘이든 리얼리즘이든 마찬가지였다. 문학과 정치체제가 긴장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문학은 당연히 현실을 표현해야 한다는 공감이랄까 당위가 있었다. 내 생각에는 91년 5월(분신정국) 이후 그런 관점은 거의 없어졌다. 전후 한국문학의 구심점이 되었던 목적의식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그 이후에 문학을 시작했다. 따라서 은폐된 현실을 폭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할 것인가가 내 소설의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 작품집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등장하는 다양한 국적과 배경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당신의 소설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작가로서 일본의 ‘지금 이곳’이 아니라 유럽의 중세나 19세기 등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까닭을 묻고 싶다.
히라노=19세기 파리를 무대로 한 <장송>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되었지만, 일본에서는 2002년에 나온 책이다. 그 책을 낸 뒤 단편을 스무 편 정도 썼는데, 모두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다. 현대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살아가는가를 드러내는 게 작가로서 내 의무라고 생각한다. 유럽을 무대로 한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언론은 사실과 정보의 전달이 주된 임무지만, 문학은 다르다.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은 단순 사실을 전달하면 그만이지만, 작가는 항상 ‘왜’를 추구해야 한다. 살인사건의 배경이 된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해 궁리해 보아야 한다. 또한 이 때의 역사란 한 나라의 역사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와 관계를 포함하는 것이다.
과거를 다룬다는 측면을 생각해 본다면, 예전부터 일본에는 ‘역사소설’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내 소설은 역사소설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역사소설은 옛일을 흥미롭게 풀어갈 뿐 현대와의 연결고리는 별로 생각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내 소설은 과거를 얘기하되 어디까지나 현대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자가 되어, 김 선생의 역사 소재 소설에 대해 묻고 싶다.
김연수=나도 ‘역사소설’을 쓰지만 이전의 역사소설들과는 역시 다르다. 그래서 당신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예전의 역사소설은 역사교과서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국가 또는 모종의 공적 권위가 부여해 주는 정체성을 인물들이 구현하는, 시바 료타로 식 역사소설이었다. 반면 현대의 역사소설은 현대적인, 복합적인 정체성을 다룬다. 가령 나는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을 쓰고 싶은데, 그럴 때에도 관심은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있는 것이다.
말을 좀 더 진전시켜 보자. 유럽연합 시대의 유럽은 역사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도 그것이 ‘근대 이후’가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국민국가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문학 또는 일본 내의 한류 같은 것에서나 역사를 공유하는 모습이 일부 보이는 듯하다. 소설에서 동아시아 3국을 두루 다루려는 나로서는 세 나라의 역사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유럽은 국경과 역사의 간극을 뛰어넘었는데, 우리 동아시아 3국은 여전히 국경에 갇혀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히라노=의표를 찌르는 말씀이다. 동아시아에서 역사를 논의하자면 항상 정치 문제가 거론된다. 특히 세 나라의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문학을 통해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번역이다. 일본 문학이 한국에서 사랑받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한국 소설은 일본에서 읽히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 소설도 마찬가지다. 영화나 드라마는 소설보다 간단하기 때문에 많이 들어오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다. 좀 더 깊이있는 언어와 문학을 통한 교류가 있어야 한다.
김연수=한 가지만 짚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다. 일본에 가 보니 이와나미 출판사에 한국어를 해독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더라. 한국의 웬만한 출판사에는 일본어를 해독하는 직원들이 많다. 이런 식의 엄청난 불균형이 엄연히 있다. 물론 일본어와 한국어가 대표하는 경제력의 차이가 개입한 탓이겠지만, 안타까웠다. 이 점은 우리가 일본 문화계를 향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끝났다’는 진단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논문 <근대문학의 종언>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신이나 나나 문학이 끝났다는 말이 회자되는 시기에 문단에 나왔다. 그럼에도 당신은 매우 고전적이며 진지한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잘 팔리고 있는 일본의 현대문학과도 다른 방식이다. 팔리지 않아도 좋다는 것인가(웃음). 내 생각은 이렇다. 죽은 것은 ‘근대’문학이다. 그런 말을 하는 학자나 평론가들은 근대문학을 공부한 이들이다. 나는 한 나라 안에서, 자국어만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이 끝났다는 뜻으로 그 말을 받아들인다. 유럽의 작가들을 보니 자국어만이 아니라 번역을 통해 독자를 확보하고 살아남는 것 같더라. 문학작품은 여전히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히라노=전적으로 동감한다.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작가가 한국에 있다는 점이 기쁘고 용기를 준다. 보르헤스가 20세기 초에 한 강연에서도 ‘소설이 죽었다고 예전에 누군가 말했지만’ 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느 시대에나 그런 말은 있었다는 것이다. 근대문학이 죽었다는 것과 소설이 죽었다는 것은 다르다. 후자는 소설 장르 자체의 무효를 선언하는 것이고, 앞의 말은 근대는 끝났을지 몰라도 그 이후에 무언가 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소설이 죽었다’는 말은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 가령 종이를 열 번 떨어뜨릴 때 그 모습은 매번 서로 다르다. 그것이 현대 사회 내의 미묘한 차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 내의 흔들림과 잡음 등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것을 제대로 다루는 것은 소설로써만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김연수=마무리 삼아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보자. 나는 잡지에 연재했던 장편 <밤은 노래한다>를 고쳐서 책으로 내고, 그 다음에는 91년 5월 이후의 변화된 분위기, 정체성의 혼란을 다룬 장편을 쓸 계획이다.
히라노=앞서 얘기한 대로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단편을 좀 더 쓰고, 그 뒤에는 살인을 주제로 한 현대물을 쓰려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처럼 살인과 죄의식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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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씨는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했으며 이듬해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전향했다. 소설집 <스무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장편 <7번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가 있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1975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났다. 교토대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1998년 일본 문예지 <신초>에 처음 투고한 소설 <일식>이 이듬해 당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장편 <달> <장송>과 소설집 <다카세가와>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산문집 <문명의 우울> 등이 있다. 프랑스, 대만, 러시아, 스웨덴 등지에서 작품이 번역 소개되었다.
정리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사진 이종근 기자
한겨례신문(2005년 10월 31일)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