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기념 영화제(7/1~8/29)>에 즈음하여, 세계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구로사와 영화의 매력과 영화 관람 포인트를 [7인의 사무라이],[라쇼몽],[가게무샤]등의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3) 모색 및 가능성의 시기

 

구로사와 아키라는 자신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해준 <라쇼몽>(1950)이전까지 약 8년간 10편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당시의 상황이 일본의 패전을 전후한 혼란스런 시기임을 감안할 때 다작인 셈인데, 구로사와가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하게 미학적인 시도를 했던 모색 및 가능성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라쇼몽>에 이르러서야 그의 미학적 스타일이 완성된 경지에 이르지만, 그때까지는 그 이전 작품들에서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 만든 작품은 <스가타 산시로>, <가장 아름답게>(1944), <속 스가타 산시로>(1945),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나이들>(1945), <우리 청춘 후회 없다>(1946), <멋진 일요일>(1947), <주정뱅이 천사>(1948), <조용한 결투>(1949), <들개>(1949), <추문>(1950)등 10편이다. (그의 스승인 야마모토 가지로 등과 공동 연출한 <내일을 만드는 사람들>(1946)은 순수한 그의 작품이 아니어서 제외했다.) 이들 작품은 주로 미국 영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그 자신의 독특한 미학이 시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영화들 중 미래의 대가로서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작품으로는 <스가타 산시로>, <우리 청춘 후회 없다>, <주정뱅이 천사>, <들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유도인의 성장영화나 다름없는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를 처음 본 선배 감독 오즈 야스히로는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며 칭찬해 주었고, 영화 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그 영화에 대해 ‘정(靜)과 동(動), 그 사이, 그 되풀이의 리듬, 그 교묘한 연출이 격투 장면에 아름다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유도 시합장면의 연출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이때 결투장면 스타일은 이후 구로사와 사무라이 영화 스타일의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패전 직후 만든 <우리 청춘 후회 없다>는 1933년 교토대학에서 실제 있었던 해직 교수 사건을 모티프로 한 다룬 멜로 영화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 순진한 여성이 전후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 혼자 꿋꿋하게 강한 자아를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 일종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구로사와는 그 여성을 통해 패전 후 일본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

 

<주정뱅이 천사>와 <들개>는 일본 비평가들이 이태리 네오리얼리즘 영화들과 궤를 같이하는 영화로서 당대의 시대상을 잘 나타냄과 동시에 그 시기의 희망과 두려움을 뛰어나게 묘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주정뱅이 천사>는 구로사와 스스로도 자부하듯이 그의 최초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장면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디졸브와 슬로우 모션을 이용한 꿈 장면이나 후반에서 주인공 미후네 도시로와 건달두목의 처절한 싸움 장면 몽타주 연출은 이후 그가 대가로서의 성장할 것이라는 전조를 보여준다.

 

권총을 잃어버린 형사가 그것을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다룬 <들개>는 그야말로 일본판 <자전거 도둑>같은 리얼리즘 영화다. 여기서 ‘잃어버린 권총’은 하나의 극적인 모티프일 뿐, 영화는 형사가 권총을 찾기 위해 동경 뒷골목을 헤매는 과정을 통해 패전 후 일본인들의 피폐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미후네가 기차역에서 범인을 찾는 장면이 매우 탁월하게 연출되었는데, 후에 스필버그가 자신의 데뷔작 <대추적>(Duel, 1972)의 카페 장면에서 그 장면의 상황 설정과 편집 방식을 효과적으로 패러디하기도 하였다. 

 

<라쇼몽>이후 작품들의 미학적 성과는 대부분 위와 같은 초기 영화들에서 한 번쯤 시도되었던 것들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패전 이후 만들어진 작품들은 당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커다란 경향을 이루었던 네오리얼리즘 스타일의 색채를 띠면서 패망으로 인한 일본인들의 좌절감과 반성, 그리고 악착같이 재기하고자 하는 몸부림과 희망을 담고 있다.

 

 

이정국(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