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의 진솔한 일본체류이야기와 일본연구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성승현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8년 펠로: 교토대학교 법학부 초빙외국인 학자
<일본으로의 출발>
1995년 가을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유럽계약법의 槪要’라는 한편의 논문은 내가 독일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하게 된 중요한 동인이었다. 그렇기에 독일유학 중,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던 중에도 나는 유럽에서 전개되는 계약법을 비롯한 私法의 통일에 관한 논의에 주목하였다. 그와 같은 학문적 논제들이 더욱 심도있게, 그리고 유럽의 사법통일을 보다 구체화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모습들을 접할 때마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도 유럽에서와 같은 계약법통일논의가 전개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논의가 현실화된다면 어떤 형식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중국・일본・한국의 민법학은 유럽에서처럼 계약법통일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공통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自問하곤 했다.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와 외국의 민법학에 대한 비교연구를 하면서 우리 법의 발전에 미친 서구법의 영향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일본민법학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면서 일본민법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동아시아 계약법의 통일’이라는 연구주제는 장래 일본학자들과 공동작업을 필요로 하고, 종래 문헌상의 연구에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나는 일본 현지에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2008년 여름 가족과 함께 교토로 출발하였다.
<교토의 여름나기>
아내는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하지 않기에 아침 일찍부터 도시락을 직접 준비하고, 나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달리던 가모가와(鴨川)의 아침은 우리 가족에게 삶의 소중한 활력소이었다.
우리 가족은 한 방에 모여 함께 잠을 잤는데, 어느 여름 밤이었다. 황궁에서 관리하는 산이 집 뒷편에 있었는데, 한밤 중이면 산 속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곤 했기에 우리 가족은 두려움에 떨다가 어느 날 저녁,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오늘 저녁은 누가 집 뒷편을 오가는지를 확인하기로 하고, 손전등을 준비했었다. 한밤중,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뒷산에서 누군가가 숲을 거니는 소리를 듣자, 우리 가족 모두 소리를 죽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제 손전등을 비추는 일만 남아있었다. 어차피 결정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손전등을 숲을 향해 비췄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사람이 아닌, 아주 몸집이 큰 멧돼지 가족이었다. 불빛을 마주하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하며 숲을 걷던 멧돼지를 확인한 후, 우리 가족은 그제서야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한학기 동안의 학교생활을 마치는 방학을 맞는 날이었고, 아이에게는 일본에서의 마지막 등교일이었다. 매일 아침 1시간씩 일본어수업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은 같은 반 친구들과 그 동안의 에피소드를 정리하여 아이에게 선물과 편지들을 전해주셨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친구들이 건네준 편지들을 보면서 아이가 그 동안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고, 특히 국경을 초월하는 우정을 쌓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돕는 중에 한국에서 익숙했던 주변의 도움이 없이 마치 아이들의 소꿉놀이처럼 교토에서 생활하면서 가족의 ‘하나’됨과 ‘힘’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교토에서의 무더위를 극복하면서 부수적으로 우리 가족은 에어컨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일본에 가기 전에 천식과 피부 알러지로 고생하던 아이가 귀국 후에 숨가쁨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뛰놀 수 있게 되었고, 피부알러지를 극복하면서 친환경적 삶의 소중함을 절감하였다.
<일본에서의 연구생활과 동아시아의 계약법>
점차 가족들이 일상생활에 적응하면서 나는 연구에 전력할 수 있게 되었고, 동료교수님들의 자상한 배려 덕택에 점차 일본 전역을 오가며 관련분야 연구자들과 인적 교류를 쌓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특히 앞서 소개했던 논문의 저자가 동경에 강연차 방문을 하였었는데, 초청자의 배려로 강연회가 끝난 후, 나는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강연자와 합석할 기회를 가졌었다. 많은 얘기가 오가던 중, 점차 주제가 동아시아에서의 법통일의 가능성과 방향으로 주제를 옮기면서 그 날 저녁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과 나는 처음으로 강연자와 함께 동아시아 계약법의 장래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우리는 ‘PECL’(Principles of European Contract Law: 유럽계약법원칙)로부터 'PACL'(Principles of Asian Contract Law: 아시아계약법원칙)이라는 공통의 Key word를 발견하게 되면서 동아시아의 계약법의 필요성과 어떻게 하면 동아시아계약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그 강연자로부터 가까운 시일에 PACL이 가시화되면 유럽에서 학술대회를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도 받았다. 그와 같은 제의는 개인적으로 아시아 근대화의 Motto에 하나였던 脫亞入歐적 사고로부터의 극복뿐만 아니라, 어쩌면 장래에 脫歐入亞적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에 한 연구회의 초청으로 나는 ‘서구법과 동아시아 민법학의 관계’라는 주제로 강연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강연회에는 평소 왕래하던 학자들은 물론, 그때까지 교류가 없던 일본과 중국의 젊은 학자들도 참석하였다. 그 날 강연회 후,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많은 학자들은 마치 동아시아계약법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처럼 그 장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동아시아계약법은 몇 명의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이제는 패션의 모드처럼 학자들의 실생활에 이미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CISG시행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와 동아시아 계약법을 향하여>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 도입된 로스쿨에서 강의하게 되었고, 로스쿨제도의 도입취지의 하나인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법조인양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동아시아의 법률가’라는 변화된 패러다임과 마주하게 되었다. 2009년 8월 1일에 CISG(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 유엔국제물품매매협약)가 일본에 발효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동아시아계약법통일을 위한 논의에 CISG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CISG는 오래 전에 중국이 비준하였고, 2005년부터 한국에서도 발효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민법전 개정작업은 CISG를 주요 검토대상으로 삼고 있기에 CISG가 동아시아 공통법마련에 가지는 의미는 훨씬 커진 상황이었다.
<장래 동아시아 계약법과 Sherpa로서 우리세대의 사명>
학술대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갔다. 학술대회를 통해 참석자들은 동아시아 공통법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시점이 도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차기의 학술대회주제와 장소 및 시기 등에 대해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중이다.
지난 10월 6일 한국은 단일시장으로는 최대규모인 EU와 FTA를 비준하였고, 내년 7월1일부터 FTA는 발효하게 된다. 나아가 한국은 일본 및 중국을 비롯해 미국과 FTA체결을 위해 논의 중이다. 이제 중국・일본・한국은 양자간 또는 다자간 협약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공통의 거래시장을 갖게 될 것이다. 장래 거래의 증가는 거래로부터 발생된 법률문제에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률규범을 분명 필요로 할 것이다.
이제 동아시아계약법에 대한 통일논의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통일법을 언제쯤 수중에 얻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어쩌면 그 논의가 비록 우리 세대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정작 그 실현은 차세대 아니면, 그 차차세대에 이르러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세대를 초월하는 과제에 속한다면 앞으로 동아시아 3국의 차세대들간의 교류확대는 더욱 필요하고, 어쩌면 우리세대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Sherpa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동아시아 공통법 마련을 위한 한중일 3국 법학자들의 더욱 왕성한 교류와 협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