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의 진솔한 일본체류이야기와 일본연구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본 체재기
김정례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 새로운 연구의 시각을 찾아서
2006년 2월, 도쿄의 어느 서점에서『한류 임팩트-Look Korea와 일본의 주체화(韓流インパクト-ルックコリアと日本の主体化)』(講談社, 2005.7)라는 책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한류 붐이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있었고 한국은 그냥 좀 어정쩡하게 관망하고 있던 그 때, 이 책은 한일간의 오랜 문화교류의 역사를 꿰뚫어가며 한류 붐 현상을 분석해 내고 있었다. 나는 당시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가 보였던 한류의 적극적 지지자인 일본여성(특히 기혼여성)들에 대한 폄훼의 시각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던 만큼, 단숨에 이 책을 완독했다. 저자는 한국철학과 사상을 연구하는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小倉紀蔵) 준교수. 그의 시각과 방법론은 일본고전시가를 통한 한일간의 문화비교를 시도하고 있는 나에게 매우 흥미로웠다.
이 저자를 직접 만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지. 2008년 10월 1일, 교토에서의 연구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일본(교토)의 한국연구를 통해서 보는 한국의 일본연구
사실은 이번이 교토에서 연구 두 번째이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나는 그 소란스러웠던 뉴밀레니엄 2000년 1월 1일 새아침을 교토에서의 1년 연구생활 중에 맞이했었다. 그 때는 사이쿄(西京)의 교외에 살았기에 이번엔 교토시내에서 생활해 보고 싶었다. 이번 숙소는 동지사(同志社)대학 근처의 아파트. 고쇼(御所)와 쇼코쿠지(相国寺)가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이제는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서있는 그들의 ‘모교’ 교정, 그 옛날 조선통신사들이 묵었던 무사시대의 선사(禪寺)가 나의 산책코스가 되었다. 고색창연한 캠퍼스의 건물이며 오랜 사찰의 위엄을 대변하는 듯 줄지어 서 있는 적송(赤松). 선조들도 저 건물과 저 소나무들을 보았으리라. 불현 듯 그들의 시선과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오구라 기조 선생님과는 그의 대학원 세미나와 월례 세미나 등을 통해 마루야마 마사오의 논저며 일본인의 세계관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특히 동아시아의 근대와 주자학적 주체에 대한 그의 논지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연구하고 있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연구 외에도 학부 신입생을 중심으로 한 포켓 제미 등을 참관하면서 교토대학의 학부생 교육 시스템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한국어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스피치대회 심사위원장으로서 이 대학 학생들의 한국어 공부에 대한 진지한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한편, 2008년 11월에는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원형연구사업단>과 <교토대학 KSNet(조선연구Net)> 이 공동세미나를 했는데, 전남대학의 아시아문화관련 전공 교수와 대학원생, 교토대학의 한국관련 전공 교수들의 발표와 토의를 통해 많은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이 세미나가 계기가 되어 전남대와 교토대학의 한국관련 교수들 간의 다양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09년 6월에는 교토 지유(自由)대학에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와 한국>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이 시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실천적 모습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어야 하며 계승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말했다. 마침 그곳은 연구자와 시민들이 함께 했던 자리였던 만큼 그 의미와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함께 이야기하며 토론하게 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오랫동안 일본을 연구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도 읽는 책도 접하는 미디어도 어느 정도 한정적이 되어서 뭐든 별로 새로워 보이지 않는 시기가 있다. 교토에 체류하는 동안, 일본인으로서 한국(혹은 중국)을 전공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시각과 논의의 향방에 대해 나눈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전통 속의 교토와 현실의 교토를 걸으며
매년 2월, 기타노덴만구(北野天満宮)에서 매화 축제가 열릴 때면, 경내 저 안쪽에서는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를 기리며 렌가(連歌)를 읊어서 봉납하는 렌가회가 열린다. 렌가 창작을 배우고 있는 나는 외국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이 유서깊은 렌가회에 참석하여, 소쇼(宗匠)의 지도 아래 오랜 렌가 창작 수련을 거친 사람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렌가를 읊어서 봉납하는 일련의 행사에 참여했다. 3월에는 벚꽃이 만개한 도지(東寺)에서의 렌가회도 참석하였다. 그 외에도 헤이안 진구(平安神宮)의 다키기노(薪能) 공연 때 보았던 오키나(翁) 공연의 다아니믹함, 거의 매달 보러갔던 간제카이칸(観世会館)의 노(能) 무대의 여러 장면도 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2008년은 마침 <겐지 모노가타리 천년제(源氏物語千年祭)>의 해였다. 여기저기서 열렸던 많은 이벤트와 강연회, 전시들. 유사 이래 교토를 찾은 관광객이 최고로 많았다는 해. 약간 들뜬 듯 붐비던 도시, 그러다가 어느덧 찾아오던 고요함.
천년 고도 교토의 고쇼 근처에서 1년을 사는 동안, 이 도시의 오랜 전통과 일상이 이루어내는 하모니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면서 동시에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이기도 했다. 300여년 전 어느 여름 날, 교토에서 잠시 체재하던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는 이런 하이쿠를 읊었다.
교토에 있는데 / 교토가 그리워라 / 소쩍새 소리
京にても京なつかしや時鳥
전통의 교토와 현실의 교토. 나는 그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며 사유의 시간을 되찾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소쩍새의 울음이 들려올 것 같은 날들이었다.
*사진은 당시 교토를 방문했던 백현미 교수(전남대 국문과)가 함께 걸으며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