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의 진솔한 일본체류이야기와 일본연구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일본의 어머니들을 만나다
윤혜경
경민대학교 아동보육과 교수
내가 일본을 처음 경험한 곳은 2003년 초여름 후쿠시마의 유명한 온천휴양지였다. 고즈넉하고 크지 않은 마을의 정경이 참으로 잔잔하게 여운을 주었다. 관광지하면 떠오르는 떠들썩함이나 화려함이 전혀없이 그저 그런 시골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자태가 매우 특이한 인상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그 뒤 일본이라는 나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일본을 가까이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꿈을 2008년 재팬파운데이션 펠로우쉽 과정을 통해서 이루게 되었다.
나는 한 사회 속에서 가족의 살아가는 방법과 그 속의 인간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온 전공자였기 때문에 역시나 일본의 가족, 특히 여성의 삶과 육아에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어머니들과의 인터뷰나, 지방자치체의 육아지원 담당공무원들과 인터뷰할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책이나 논문으로는 접할 수 없는 어머니들의 생생한 삶의 목소리와 일본의 실제적인 육아지원 실천에 대해 보고 느낄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본인 특유의 인내심과 성실함, 이것은 일본 어머니들의 가사와 육아에서도 그대로 발견되었다. 개인적인 사교모임이나 친구들 모임, 자발적 취미생활이나 동아리모임, 운동, 이런 것들이 한국의 중산층의 어머니들의 문화 속에서 비교적 쉽게 발견된다면, 내가 본 바에서는 일본의 어머니들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지극히 절제되어 있고, 충실한 주부와 어머니의 역할로 자신의 책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경제적으로 가계에 도움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죄악감을 느낀다는 어느 한 어머니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과연 부자나라 선진국 일본 어머니들의 정서일까 잠시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일본 어머니들은 지극히 서구화된 개인주의 사회 속에 살면서도 아이러니 하게 가족 내에서는 가부장적 분위기, 남성중심의 사회 경제적 문화,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노미를 겪고 있는 듯 보였다. 한국 사회에 비해 더 많은 사회적 지원과 적극적인 국가의 육아지원 총력전, 그리고 안정된 경제적 사회적 제반 시설들, 이런 것들 속에서도 뭔가 평등하지 않은 사회적 구조가 어머니들에게 참으로 미묘한 희생을 요구하는구나 라고 느껴지는 순간, 일본 어머니들의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한편 취업모들은 지자체에서 정해주는 보육시설에 아이들을 맡기면서, 자리가 없을 경우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린다. 어느 한 어머니와의 인터뷰에서 두 아이를 1시간이나 떨어진 다른 보육소에 맡기면서 이러저리 뛰어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어안이 먹먹해지곤 했다. 조용히 국가의 시책을 따르고 기다리는 모습을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또한 매일매일 조금씩 장을 보고,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을 실어 날르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유치원이 끝날 시간이 되면 어린 동생을 유모차에 태워서 마중을 나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기다리는 수수한 차림의 어머니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기 까지 하였다.
교육마마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이 일본의 어머니들도 한국의 어머니들 못지 않게 아이들의 교육과 진학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책임감을 느끼고, 잘못되었을 경우 인생의 절망감마저 느낀다는 것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도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게 자녀를 훈육하고, 또 조용히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일본의 어머니들을 보면서 우리와 닮았지만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일본을 처음가면 한국과 닮았다는 데에 한 번 놀란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닮은 속에서 참 많이 다르다는 데에 두 번 놀란다. 나는 그런 차이가 가정에서 비롯된다고 항상 느껴왔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남에게 폐를 끼지치 않으려 극도로 조심하고, 그리고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위해 조용히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도록 가정에서 가르치고 훈육한다. 그런 모습을 어머니가 먼저 자녀들에게 솔선수범으로 보여주고 일상생활에서 무엇보다도 그런 가치를 먼저 가르친다.
나는 한국이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진솔하고 정이 깊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거나 사회의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것을 뒤로 양보하는 그런 면에서는 아직은 선진국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경쟁에서 이겨야야 하고, 내가 더 돋보여야 하고, 남보다 내가 먼저 가져야 하고, 서둘러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 걸음을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지하철 역사에서 하루종일 말없이 진지하게 바닥을 닦고 계시는 역무원 할아버지, 크던 작던 공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공사장 인부아저씨들의 진지하고도 친절한 안내, 공중목욕탕에서 쉬지 않고 정성스럽게 손님들이 떨어뜨리는 물방울을 닦고 계시는 청소아주머니, 이런 분들의 조용한 노동이 일본에서 내가 보고 느낀 감동의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자전거에 저녁 찬거리를 싣고 소리없이 거리를 가로지르는 주부들의 바쁜 움직임들, 누구하나 곁눈질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내내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곤 하였다. 바로 그점이 나로 하여금 일본이라는 나라를 존경하게 하는 요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