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제교류기금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의 진솔한 일본체류이야기와 일본연구이야기를 담았습니다.

 

JF와 함께 한 사람들 (16)

 

 

앞마당 벚꽃의 추억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필자는 서울모처의 음식점에 있었다. 지진속보로 흘러나온 초기내용은 정보가 없었던 탓인지 진도가 좀 세지만 크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진도 4~5 정도야 일상적으로 발생하니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으로 짐작했었다. 점차 밝혀진 엄청난 대재앙의 징조는 적어도 몇 시간 뒤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날은 필자의 귀국환영회였다. 일본에서 1년을 보낸 후 막 귀국했던 터라 지인들과 서둘러 만든 ‘웃는’ 자리였다. 많은 얘기가 오가며 화기애애했지만 그 웃음을 잃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진상이 밝혀지면서부터는 만감이 교차했다. ‘우는’ 모습에 먹먹함이 밀려들고 답답해져 견디기 힘들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지냈던 나라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시간과 공간의 문제일 뿐 대재앙은 곧 필자에게도 얼마든 닥쳤을 불운이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남은 이와 떠난 자의 경계란 참으로 묘했고 모호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명복을 빌고 응원의 힘을 보태는 바이다.

 

 필자의 일본체제는 ‘지진이전’의 일답게 꽤 유쾌하고 즐거운 추억이었다. 그만큼 ‘지진이후’ 지금 그 기억을 떠올리자니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부터 앞선다. 어쨌건 ‘지진이전’으로 리셋한 후 1년의 추억을 반추하자면 요컨대 다시없을 소중한 나날로 정리된다. 필자는 기자로 사회에 데뷔한 후 뒤늦게 공부한 경우다. 기자시절 사회각계의 유명인사와 만나며 부족한 공부를 절감한 후 과감히 책상 앞으로의 리턴을 결정했다. 단순히 듣고 전하기보단 뜯어보고 말하는 발신역할의 의미에 무게중심을 둔 결과다. 지금은 학계와 사회에 반쯤 걸친 상태로 ‘일본’과 ‘경제(금융)’에 포커스를 맞춘 상태다. 한국의 미래를 일본의 오늘에서 짚어보자는 차원이다. 필자가 일본행을 선택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기자 때부터 내리 달려온 까닭에 한숨을 돌려보고 싶다는 마음과 제대로 된 현대일본의 참모습을 느껴보고 싶다는 동기가 맞물렸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차일피일 일상에 젖어있던 어느 날 앞서 기금지원으로 안식년을 다녀온 선배선생님께서 힌트를 줬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다. 쟁쟁한 분들조차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한다니 희망사항에 불과했었다.

 

 원하면 되는가 보다. 운 좋게 덜컥 “1년 간 다녀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때부터 바빠졌다.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일본행은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축복이었다. 몇 달 간의 준비이후 4가족은 어느 이른 봄 일본에 도착했다. 게이오(慶應)가 배려해준 히요시(日吉) 외국인교원주택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인 일본생활에 들어갔다. 가족과의 동반생활은 과거 홀몸이던 유학시절 때와는 180도 달라진 새로운 시선과 경험을 안겨줬다. 든든한 경제지원과 연구기반 제공은 한층 깊이 현대일본의 진면목을 살펴보는데 큰 힘이 됐다. 걱정 없이 관심분야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강의와 토론기회를 제공한 게이오 경제학부에도 적잖은 빚을 졌다. 무엇보다 각계전문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그들의 진정한 속내와 갈등적 고민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필자의 연구주제였던 ‘고령사회와 노인복지’와 관련해서는 피상적인 간접자료로 파악하기 힘들었던 부분을 직접 대면접촉하며 어울러 공감하는 가운데 체감적인 정보를 많이 얻었다. 특히 낮(도서관)과 밤(커뮤니케이션)의 융합이 이론과 현실을 연결시키는데 주효했다. 학계는 물론 언론계재계의 수많은 이들과의 교감은 1년의 장기체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지에서의 연구와 경험을 한국미디어에 발신하며 일본의 오늘모습을 생생하게 비춰준 것도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귀국 후 연구결과를 논문과 책으로 정리했으며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내일을 읽으려는 이들로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얻어 행복했다.

 

 1년의 일본체제는 무엇보다 가족에게 잊어지지 않은 경험을 선물했다. 맞벌이로 앞만 보며 달려온 가족에게 1년의 쉼표가 이후의 삶을 가꾸는데 좋은 분기점을 제공한 듯하다. 특히 일본학교에서 일본친구와 어울리며 1년을 보낸 아이들의 기억이 값진 자산이 될 터다. 두 아이의 부모로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어울리며 쌓은 애정과 우정도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얼마 전엔 단짝이던 딸아이 친구가 한국에 놀러와 소중한 추억을 하나 더 남겼다. 불과 몇 개월 만에 가물가물해진 일본어였겠지만 그들의 완전한 의사소통엔 불과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놀라운 흡수력과 상호간의 우정확인은 옆에서 지켜본 필자에게도 놀라움을 안겨줬다. 말이 일본어일 뿐 장난치며 떠들고 웃는 모습은 음이 소거된 비디오와 다름없었다. 다른 둘이 함께 걷는 이해와 우정이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1년의 경험과 공감이 ‘가교’란 말의 진짜의미를 몸으로 생생히 가르쳐준 셈이다. 벌써 귀국한지 1년이 흘렀다. 먹고사느라 현실적응에 바빴던 까닭에 멀고 먼 옛 얘기처럼 아득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만 감으면 어제 일처럼 일본에서의 일상이 뚜렷이 떠오른다. 1년 전 오늘 우리가족은 벚꽃이 가득했던 일본집 앞마당에서 행복을 써내려갔다. 그립고 또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