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와 함께 한 사람들 (18)

 

 

 

 

광운대학교 일본학과 및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강태웅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지 딱 한 달이 지난 2011411, 필자의 일본 펠로십은 시작하였다. 하루에도 십여 차례의 여진이 계속되었고, 곳곳의 에스컬레이터는 운행을 하지 않았고, 가로등도 듬성듬성 켜져 있었고, 자판기도 많이 작동을 하지 않았다. 도쿄대학의 중앙도서관은 아침 늦게 열고 일찍 닫았고 일부 단과대학 도서관은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TV와 신문은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유출된 방사능의 영향, 그리고 대체 에너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여, 필자의 전공은 일본영화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다. 전력부족이 우려되는 여름이 다가오면서, 오히려 대부분의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필자의 일과는 매일 비슷하였다. 도쿄대학이 2010년에 새로 지은 인터내셔널 하우스에서 기숙하며, 아침에 일어나 편의점에서 신문과 빵을 사서 야스다 강당 앞의 커다란 나무 밑 벤치에서 신문을 읽고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점심식사는 학교 길 건너 점심만 싸게 파는 일식집에서 구운 생선 정식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서고에 들어가 옛날 자료를 찾아 복사를 하고, 저녁식사는 메이지 시대부터 도쿄대학생과라 쓰여 있는 식당에 들어가 그날의 메뉴를 주문하여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녹화한 TV프로그램과 영화를 확인하고 취침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해 그 동안 구상하던 연구테마에 대한 자료를 마음껏 섭렵할 수 있었고, 또한 책 한 권을 번역할 수 있었다. 번역한 책은 영화 <라쇼몽><7인의 사무라이>의 각본을 썼던 하시모토 시노부의 저서 『복안(複眼)의 영상』(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총서, 소화출판사)으로, 지난 3월 출판되었다.

 

 특별한 만남도 있었다. 한국가요의 일본진출이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와중에, 클래식의 한류라 불리며 최근 일본에서 조금씩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바리톤 성악가 H씨가 있다. 필자의 친구이기도 하여 도쿄에서 공연을 할 경우 몇 번 가서 볼 수 있었다. 평소부터 한류 팬에 대하여 궁금하였던 차에, 그의 공연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그룹과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그룹은 대부분 50대 후반 이상의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이루어졌고, 클래식에 조예가 매우 깊다. H씨의 공연이 끝나면 언제나 주변의 식당에서 모여 그날 공연에 대하여 평가하고, 헤어지면서 다음 공연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진다. H씨의 공연 장소는 도쿄가 아니라 오사카나 홋카이도 등 지방일 경우가 많지만 그건 그 그룹멤버들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H씨의 학창시절 모습에 대한 필자의 이야기에 너무나도 경청하는 모습에 한류 팬의 많은 면을 배울 수 있었다.

 

 필자의 전공과 관련하여 가부키 관람과 영화제 참여는 필수적이었다. 긴자의 가부키좌가 공사 중이고 나카무라 간자부로가 몸이 안 좋기에 매우 실망하기도 하였으나, 그 동안 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던, 간자부로가 만든 코쿤 가부키와 헤이세이 나카무라좌 가부키를 볼 수 있었다. 코쿤 가부키는 시부야 분카무라에 있는 코쿤극장에서 상연되는 것으로, 가부키 작품이 현대식으로 재해석된 형태로 연출된다. 게다가 과감한 무대장치가 설치되어 필자가 본 작품에서는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기도 하였다. 헤이세이 나카무라좌는 에도시대의 가부키극장을 본떠 만든 가설건물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말하고, 작년 공연에서는 극장 뒤의 벽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밖에 보이는 도쿄 스카이트리를 가부키 배우의 정지동작(미에 見得)과 연결시키는, 시의적절한 퍼포먼스도 보여주었다.

 

 많은 영화제에 참여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피아(ぴあ) 영화제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는 주로 신인감독발굴과 독립영화제작 장려를 위한 영화제이지만, 작년에는 영화 레슨이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같이 개최하였다. 세대차이가 나는 두 명의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를 관객과 같이 보고, 이에 대하여 토론하는 이벤트였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청년과 그의 인생에 차질이 되어버린 세탁소집 딸과의 관계를 1974년이라는 시대배경을 잘 살려 만든 <청춘의 차질>을 같이 보았고, 이에 대해서 이와이 슌지 감독과 하세가와 가즈히코 감독이 토론하였다.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본감독인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관과 앞으로의 제작방향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하세가와 가즈히코는 플루토늄을 훔쳐 원자폭탄을 만들고 일본정부를 협박하는 영화 <태양을 훔친 남자>(1974)를 만든 감독으로, 이 작품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작년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하세가와 감독 자신이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했기에 그의 개인사와 영화를 접목시켜 볼 수 있게 만든 귀중한 이벤트였다. 그밖에도 많은 영화제에 참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일본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