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일본 거장전(3K영화제:7/1~8/10)>에 즈음하여, 일본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고바야시 마사키, 기노시타 게이스케, 기무라 다케오 3인의 감독이 제작한 영화의 매력과 영화 관람 포인트를 3인의 대표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
이정국(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영화감독)
평생 50편에 가까운 영화를 감독한 기노시타 게이스케(1912-1998)는 사회적 풍자를 통해 인간적 상황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강조하곤 하였다. 그의 영화를 보면 1960년대 우리 한국의 가족 영화의 정서와 유사함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극단적이고 강한 휴머니즘을 추구한 고바야시 마사키와 달리 그의 스승인 기노시타는 주로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기조로 한 사회 풍자극을 멜로와 코미디를 적절히 활용해 만들었던 감독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보다 두 살 어리지만 영화에 입문한 시기와 데뷔 년도는 거의 똑같다. 감독 데뷔작인〈꽃피는 항구 花咲く港〉(1943)는 상업적인 대성공을 거두었고, 3년 뒤 전시 하에서 부침하는 가족 이야기를 그린〈오소네가의 아침 大會根家の朝〉(1946)으로 키네마 준보상을 받으며 전후(戰後) 가장 재능 있는 감독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일본 최초의 색채영화인〈카르멘 고향에 돌아가다 ヵルメン故鄕に歸る(1951)와 〈카르멘의 순수한 사랑 カルメン純情す〉(1952)은 대중의 인기를 모은 영화로서 익살스런 인물을 등장시켜 신분질서를 풍자했다. <카르멘 고향에 돌아가다〉(1951)는 도시에서 스트립 댄서를 하던 ‘카르멘’ 캐릭터 닮은 아가씨가 친구와 함께 고향에 돌아와 전통적인 분위기의 시골 사람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상황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제목에서 풍기듯이 서양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당대 정서가 잘 살아나 있다. 그는 이밖에도 가족의 붕괴, 숭고한 희생, 빗나간 폭력 등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는데,〈일본의 비극 日本の悲劇〉(1953)은 뉴스영화의 화면 사이사이에 빗나간 자식을 위해 몸을 파는 과부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한 작품이다. 그의 2번째 키네마 준보 상 수상작 〈스물네 개의 눈동자 二十四の瞳〉(1954)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 12명의 학생과 그들이 존경하는 선생님의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기노시타의 평화 지향적이고 반봉건적인 사상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3번째 키네마 준보 상을 안겨준 작품 〈나라야마 부시코 楢山節考〉(1958)는 우리나라 고려장과 유사한 풍습을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이 어머니가 늙어가자 어쩔 수 없이 나라야마 산에 버리게 되는 이야기다. 후카자와 시치로 원작 소설을 각색하였는데, 무대극적인 세트로 양식화 시켜 만든 이 작품은 그 해 최고 영화로 평가 받았고, 나중에 이마무라 쇼오헤이 감독이 동명으로 리메이크해서 1980년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김기영 감독이 유사한 내용으로 <고려장>(1963)이라는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기노시타의 이후 작품들로는 이후의 작품들로는 〈나가사키의 아이들 この子を殘して〉(1983)과 〈기쁨과 슬픔의 시간들 喜びも悲しみも幾歲月〉(1986) 등이 있다.
기노시타 게이스케는 분명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일본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거장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일본 국내에선 당시 한참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구로사와 보다 더 작품성을 평가를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지만, 국제적으론 그다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가 다룬 소재나 주제의 지나친 통속성에다 형식 면에서 오즈나 미조구치, 또는 나루세 미키오처럼 독창적인 스타일을 갖추지 못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의 작품들은 동시대의 변화해가는 일본 세태를, 거장의 작품들에서 풍기는 위압감이나 엄숙함 대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미학으로 그리고 있기에 친근하게 느껴진다. 기노시타 게이스케는 구로사와나 고바야시처럼 강하진 못하지만 부드럽고, 오즈나 미조구치처럼 엄격하진 못하지만 자유로운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