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사는 다문화 아이들!
현정환(서울신학대학교 보육학과)
2012년 1월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2개월이라는 단기 펠로십이었지만 그동안 느슨했던 마음을 다잡고 학자로서 재충전과 연구에 대한 긴장감을 느끼는 기회로 삼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1월 6일 일본 히로시마로 향했다.
1월이라 추웠다. 다행히 히로시마는 서울보다는 훨씬 따뜻한 기온이었다. 하지만 방이 온돌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방안 공기는 바깥 공기의 차가움을 그대로 품고 있어 겨울의 추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보냈다.
2개월 동안 정말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 일본에 가자마자 생활에 필요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했고, 이후에는 연구 과제의 수행을 위해 연구 대상자를 찾는 작업, 일본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조사하는 작업, 그리고 귀국 2주를 앞두고는 귀국 준비를 하는 등, 두 달 동안 정신적으로 여념이 없었다.
8년 동안의 일본유학생활의 경험이 있었던 나로서는 일본의 문화나 생활환경에는 익숙해 있어서 일본 적응에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지만, 청소, 세탁, 식사 등의 집안일을 혼자서 해결해야하는 상황은 연구과제 수행만큼 힘들었다.
나의 연구주제는 다문화 가정 아동의 보육이나 교육 문제를 일본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어떻게 지원 내지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였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단일민족, 단일문화라는 의식이 강했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는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면서 특히 결혼이주여성이나 이들 자녀의 적응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보육이나 교육관련 학계에서는 이런 다문화 가정 아동에 대한 이해와 효과적인 지원전략을 세우는 연구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나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일본 유학시절, 두 딸을 키우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는 이런 연구 주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 같다. 두 딸은 모두 일본 태생이다. 모두 한 살도 되기도 전에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또래에 비해 언어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행동 면에서는 너무나 동적이어서 친구들과 물리적으로 부딪히는 등, 어린이집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일본 선생님의 이해와 배려 덕택에 특별한 어려움 없이 지냈던 경험은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브라질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일본어와 포르투갈어로 선생님을 소개하고 있는 게시판(나고야의 G어린이집)
일본은 다문화 가정 아이에 대해 우리보다는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면서 이들의 교육이나 보육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었다.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시발점은 1980년대 중반 중국잔류고아의 영주 귀국 후의 적응문제와 해외 일본계 이주자들의 적응문제가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부터였다고 생각된다. 그 당시에 일본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던 나는 방송에서 중국잔류고아의 귀국 뉴스와 가족과의 면회, 적응에 대한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었다. 이들의 반세기만의 귀향, 혈육과의 극적인 상봉, 그리고 혈육을 찾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아쉬운 발걸음으로 고국을 뒤로하는 모습이 거의 연일 TV에 보도되곤 하였다. 그런데 일본 정부나 민간단체들이 이들의 혈육을 찾아주고 고국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애쓰고 있었지만, 중국의 문화와 생활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이들에게는 영주 귀국 후 일본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아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었던 일본의 사례는 다문화 가정 아이의 적응문제나 지원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하는 나로서는 기대가 컸다.
연구의 과정에서는 무엇보다도 일본 지인들의 도움이 컸다. 유학시절 학과 동료나 후배들인 이들은 지금은 대부분 대학교수들이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재원하고 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쉽게 소개받을 수 있었고, 원장이나 교사들의 태도도 매우 협조적이었다. 덕택에 히로시마 외에도 나고야, 동경 등을 다니면서 11개소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방문할 수 있었고, 원장, 교사, 다문화 가정 부모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 원장님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특히 한국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일본어를 제대로 읽고 쓸 수 있도록 학습적인 것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이가 친구들과 놀다가 다쳤지만 선생님이 의외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모래놀이를 하게 되면 손톱에 모래가 들어가서 아이의 위생에 좋지 않는데 꼭 모래놀이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한국 아이들은 활동하기 불편할 정도로 너무 단정하고 화려하게 옷을 입혀서 등원시킨다는 등, 한국 부모에 대한 일본 선생님들의 고충을 들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아이는 집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있다 (히가시 히로시마의 H유치원의 점심시간)
우리나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라고 한다면 이런 이야기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본 선생님들은 한국 부모들의 이런 반응이나 태도에 대해 당황스럽고 힘들다는 고충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일본 보육이 아이의 위생이나 안전, 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무엇이 우선이고 중요한지에 대한 아동관, 그리고 문제의 본질과 이에 대처하는 효과적 전략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사과정에서 얻은 큰 수확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대처하는 일본 선생님들의 태도나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외국적 부모들의 이런 저런 바람이나 문제 제기에 대해 충분히 경청을 하지만, 아이들의 발달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는 보육에 대해서는 그것을 수용하지 않고 꾸준하게 부모를 설득시켜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와는 다르게 부모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이들의 보육마인드, 그리고 다문화 가정 부모들을 이해시키고 협조를 얻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자세는 우리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보육문제 해결을 생각할 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비록 2개월 동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사를 통해서 얻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여 3편의 논문으로 정리하여 학회지에 게재할 수 있었다.
끝으로 일본 교수들의 도움, 일본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원장, 교사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연구였기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JF 펠로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은 정말로 나에게는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