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배정열
2012년 1년간을 일본국제교류기금의 펠로십 덕분에 동경에서 즐겁고도 유익하게 보내게 된 것을 감사드린다. 덕분에 주어진 시간을 전공분야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던 행운을 가졌으며, 오랜만에 동경에 있는 자식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대학 강단에서 첫 강의로 <츠레즈레쿠사(徒然草)>와 <마쿠라노소시(枕草子)>를 원문 강독했었다. 대학의 전공 교육이라면 원문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내심 고전문학은 대학 강의의 중심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했었다. <일본문학사>가 오랜 기간 필수과목으로 많은 학생들을 긴장시켰던 때도 있었다. 고전문학을 배우기 위한 기초과목으로 <일고전문법>이라는 과목도 10년 이상을 강의했었다. 일본고전문학 연구는 나에게 있어 신앙이기도 했다. 폭넓게 아는 것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그만큼 전공 공부가 즐겁고 그저 좋았다. 그 당시 수강생들 중에는 지금 고등학교 일본어 교사도 꽤 많다. 몇몇은 일본에 유학하여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된 제자도 있고, 현재 유학중인 제자들도 몇 명 있다.
일본고전문학 연구자로서 학생들에게 본인의 전공인 고전문학을 강의한다는 것은 참 행복하고 보람찬 일이었다. 대학의 강의는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고 힘주어 말했었다. 무던히도 참을성 많았던 제자들이었다. 그저 고맙고 그리운 시절이 되었다.
급변하는 대학문화 속에서 고전문학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학습에도 기초를 많이 쌓아야만 학습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높은 산을 등반하기 위해 기초체력단련을 필요로 하듯이 말이다. 그런 분야가 고전문학이라 생각한다. 쉽고 재미있는 분야만을 고집해서는 레벨을 견지할 수가 없다. 대학교육은 높은 수준의 레벨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믿기에 고전문학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나의 스승들의 영향이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가까이에서 보고 배운 것은 나의 인생의 최고의 기쁨이다.
지금까지 3번의 연구년 기회를 가졌다. 수업과 잡무로부터의 해방임과 동시에 마음껏 시간을 쓸 수 있는 기회였다. 3번의 기회 모두 일본의 대학도서관에서 보냈다. 고맙기 그지없다. 전공교육에 대해 회의가 올 때마다 연구년을 통해 재충전 할 수 있었고 전공인 고전문학을 더욱 사랑하게 해 주었다.
주변대학의 일본학 관련학과가 경상계열 학과와 통합되거나 축소된다고 한다.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 문과대학 자체가 폐지되는 대학도 있다고 한다. 실용학문으로의 전환이 키워드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일관계도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다. 양국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보다 상처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도 급격히 줄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의 전공인 고전문학에 대해 책임감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추운 겨울이 되어야만 비로소 소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일본고전문학 연구는 신앙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