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디어와 청년문화와의 생생한 만남

 

안정임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

 

내 전공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학이다. 흔히 신문방송학, 언론학, 영상학 등으로 불리는 영역인데, 나는 그 중에서도 젊은 세대들의 미디어 이용행태와 문화, 미디어를 통한 교육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분야 연구의 특징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미국대학의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학이라는 분야가 미국을 중심으로 태동되고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을 제외한 지역, 특히 유럽이나 일본 등의 미디어관련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특히 일본의 경우, 한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이나 문화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학술연구를 통한 교류는 매우 제한적이다. 젊은이들은 만화, 음악, 영화, 방송프로그램, 게임 등을 통해 공식, 비공식적으로 광범위한 문화적 교류를 하고 있는데 비해 정작 이를 연구하는 학술적 교류는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일본 젊은 층들의 미디어 이용현황과 문화가 궁금했다. 한국의 젊은 층과는 같은 듯, 다른 듯 매우 독특한 문화적 태도를 갖고 있는 그들의 미디어 이용문화를 직접 연구하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물론 자료검색을 통한 통계적 수치나 기사, 책 등에서 간접적인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문화라는 것, 특히 미디어를 통한 대중문화라는 것은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관찰하고 겪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연구할 수 없는 대상이다.

교토역에서 공연중인 일본청소년들
그런 와중에 일본국제교류기금에 펠로십을 신청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소개를 받았다. 귀가 솔깃했으나 문제는 내가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나로서는 일본어는 취미로 따둔 JLPT 중급 정도의 언어수준밖에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펠로십 신청을 하기 전에 JF 서울문화센터의 일본연구펠로십 담당자에게 문의를 드렸다. 담당자는 JF 펠로십은 모든 학문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열려있고, 일본어를 잘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며 흔쾌히 신청을 독려해주었다.

용기를 내서 신청한 결과, 운이 좋게도 20127월부터 1년간 교토의 리츠메이칸대학에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교토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 연구와 관련하여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대중문화는 철저하게 현장중심이어야 한다. 연구실이나 도서관보다는 거리와 대중장소, 그리고 개별적 모임 등에서 관찰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가급적 많은 일상적 관찰에 주력할 것. 둘째, 일본의 방송 프로그램은 한국과 매우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비공식적 루트의 일본드라마 시청은 꽤 많지만 일반 예능프로그램이나 뉴스, 다큐멘터리 등의 프로그램은 시청기회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일상적 방송프로그램이야말로 실제 대중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원천이므로 TV 보기에도 시간을 충분히 할애할 것.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시작한 교토에서의 일 년은 내게는 매우 바쁘고 신나는 시간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서, 또 카페나 음식점에서도 일본인들의 휴대폰 사용습관이나 행위를 눈여겨보고 어떤 활동을 주로 하는지를 관찰했다. 학교에서도 연구실에 있기 보다는 식당, 캠퍼스, 그룹모임 등에서 디지털 미디어가 젊은 층들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관찰하고 또 조사하는 일들을 진행했다. 학교 외에서도 다양한 젊은이들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JF 교토사무소가 위치한 교토 인터내셔널커뮤니티하우스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그룹활동이나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를 통해 일본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장년층, 그리고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다양한 외국의 젊은이들까지 만나고 교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경험들이 나에게는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 일본차도수업을 수강중인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

한편 숙소로 돌아와서는 가능한 한 젊은이들이 많이 출연하는 방송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했다. 일본어 사전을 앞에 두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들을 찾아가면서 어떤 내용들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 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를 집중적으로 모니터하고 기록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재미있었던 것은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일본 젊은이들은 상당히 조용하고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미디어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일본 텔레비전 속의 그들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오히려 시끄러운 느낌마저 있었다는 점이다. 소위 ‘먹방’이라 불리는 예능프로그램들이 일본 TV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속의 출연자들이 끊임없이 감탄사를 터뜨리는 모습들은 지금 한국의 TV의 특성과 많이 닮아있었다. 또한 뉴스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 역시 일본의 미디어 문화를 이해하는데 결정적 단서들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현장 관찰과 미디어 모니터링으로 쌓여진 결과들은 젊은 층의 미디어 이용행태 및 문화에 대한 대규모 한일 비교 설문조사와 분석을 시행하는데 큰 밑바탕이 되었다.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연구를 진행하는 중에 내가 얻은 부수적인 결과는 또 한가지가 있다. 교토라는 도시의 전통과 역동성, 자연과 현대의 공존을 매일 보고 느끼면서 얻게 된 개인적인 힐링과 충전의 경험이다. 바쁘고 활발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차분한 평정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교토라는 도시가 주는 묘한 힘이 아니었나 싶다. 이것이야말로 현지 펠로십을 통한 연구가 갖는 또 다른 장점이라 생각한다. 연구자의 마음을 연구의 모드로, 또 성찰의 모드로 세팅해줄 수 있는 최적의 기회인 것이다.

펠로십 기간을 마치고 돌아온 지 2년이 가까운 지금도 나는 한일 젊은 세대들의 미디어 문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 비교연구를 확대해볼 계획도 갖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내게는 낯설었던 나라, 그러나 궁금하고 알고 싶었던 나라인 일본에서 직접 생활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일본국제교류기금 덕분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