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사카에서 보낸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
박기령
프리랜서 연구자
지난 해 연구비 지원을 받아, <1960년대 일본의 실험 애니메이션과 예술 문화 동향에 관한 연구>라는 테마로 조사를 다녀온 곳은 오사카였다. 오사카 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영상예술을 공부하는 동안, 오사카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다른 도시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2개월 동안의 짧은 연구 기간을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서, 가장 친숙한 오사카로 결정하게 되었다. 오사카에 가기로 하면서 지인들과의 만남을 가장 기대했다. 오사카 예술대학 대학원의 교수님들과, 오사카에 살고 있는연구자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실제로 그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이번 연구는 문헌 및 논문 조사는 물론,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영상 작품을 찾고 감상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 졸업생 자격으로 오사카 예술대학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가의 작품이나 오래된 작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구하기 어려운 영상 작품의 감상은 영상 연구자에게는 큰 자산이 된다. 또 이 도서관에는 예술 관련 자료가 풍부했다. 그래서 1960년대 예술문화 – 영화, 회화, 디자인, 만화 등 – 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분야 별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직접 찾고 열람하고 확인하고, 어떻게 사용할까를 결정하는 것은, 연구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컴퓨터로 검색하고 파일로 받을 때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이러한 여유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오사카에 있는 동안 서점에도 많이 갔는데, 최근의 자료도 볼 수 있고 예술문화의 현황도 살펴볼 수 있었다. 서점은 무엇보다 연구에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어서 오래 머무르게 되는 곳이다. 이렇게 이번 연구 기간은, 테마 관련의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전공 책에 몰두했던 대학원 시절을 돌아보고, 자료 수집의 기쁨을 다시 회복하고, 교수님들과도 교류하면서 연구의 활력을 찾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사>의 저자 와타나베 선생님의 자료 노트 |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사(日本アニメーション映画史)>(1977년) 의 저자 와타나베 야스시(渡辺泰) 선생님과의 만남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책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읽어야 하는 자료이다. 1960년대의 동향에 관해서도 잘 알고 계실 것 같아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는데, 그 만남을 통해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와타나베 선생님이 일생 동안 수집해 온 자료의 방대함에 부끄러웠다. 컴퓨터가 없는 시대에 신문, 잡지 등을 모으거나 복사하거나 하여, 일일이 노트에 자료의 리스트를 작성해 놓은 것이다. 요즘에는 컴퓨터에서 검색하고 자료도 파일로 보기 때문에, 자료를 취급하는 방식이 예전과는 다르다. 편리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지금과 비교하여, 예전에는 논문을 쓰고 논하는 사고의 방식도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와타나베 선생님의 자료를 대하는 순간 느꼈던 감동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연구에 대한 태도와 방법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흔쾌히 자료를 빌려 주시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신 데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오사카에서 생활하는 동안 겪은 몇 가지 경험을 나누고 싶다. 우선 주거에 관해서이다. 지인의 집에 머물까도 생각했지만, 가구와 전기 제품 등이 구비된 집을 빌렸다. 일반적인 월세보다는 비쌌지만, 연구와 휴식에 장점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덕분에 독립된 연구 공간을 확보하고 편하게 쉴 수도 있었다. 식사의 경우, 일본에서는 곳곳에 빵집이 있어서 아침 식사 등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커피와 빵, 샌드위치 등을 자주 먹었는데, 적당한 가격에다가 든든한 한끼 식사로도 만족스러웠다. 한식이 그리운 날에는, 예전보다 한국식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져서, 비빔밥이나 순두부 찌개 등은 어렵지 않게 사 먹을 수 있었다. 어느 백화점에서는 꼬마 김밥도 판매되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서점은 최근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장소이다. 당시 <빨강머리 앤>의 번역자인 무라오카 하나코의 인생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한창 화제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연구를 위해 수집한 자료는 우체국을 통해 항공편으로 보낼 수 있었다. 큰 상자는 대개 슈퍼나 편의점에서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자료를 넣고 우체국에 미리 연락해 두면, 우체국 직원이 약속한 시간에 가지러 와준다.
앞으로도 일본에 관한 연구는 계속해 가고 싶다. 전공인 영상예술을 바탕으로 하여 일본의 영화를 비롯한 예술문화에 관해서도 더 알아 가려고 한다. 이번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지원으로 오사카에서 보낸 시간은 그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연구자로서 있기 까지는, 유학 때도 그랬지만 이번 연구 기간 동안의 만남이 중요했다.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더 넓은 시야와 더 깊은 이해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오사카에서 그 분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필자 프로필 -
2005년 오사카 예술대학 대학원 예술문화 연구과 (영상예술 전공) 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조수로서 재직한 후 2007년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및 영상 관련의 과목을 강의해 왔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연구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의 크리에이터들 : 창조와 실험의 이름으로>라는 저서를 냈다. 현재 프리랜서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