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알아가기

 

박 해 남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

 

역사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알게 된 선배학자들 중엔 일본에서 1년 정도의 체류기간을 가진 이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식민지기를 주제로 논문을 썼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 역시 같은 시기를 대상으로 논문을 쓰겠다 하며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랬기에 막연하게나마 언젠가 일본에서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했다.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시작할 땐 쉽게 보이던 일본어는 갈수록 어려운 언어였다. 일본어 책도 읽고 일본사람과 이야기도 할 만큼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논문의 소재가 ‘응답하라’의 그 ‘88이 되어 일본과의 직접적 연관성이 사라졌다. 내게 일본. 그리고 그 수도 도쿄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 내가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연구지원을 신청하게 된 계기는 이랬다. 이년 전 어느 여름 밤, 자정을 넘어섰음에도 숙소를 찾아 나는 독일의 한 작은 도시를 배회하고 있었다. 가로등조차 절반은 꺼진 그 황량한 도시에서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도쿄는 가까운 곳이구나.” 도쿄를 여행할 때 보았던 친숙한 도시 풍경들, 특히 늦은 밤에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상점가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그 먼 곳에서 도쿄가 가깝게 다가왔다.

 ▼ 도쿄도립중앙도서관: 올림픽50주년기념전시회

여행지에서 돌아왔을 땐 도쿄가 2020년에 다시 올림픽을 개최한단 소식이 들렸다. , 2014년은 64년 올림픽이 열린지 50년이 된 해였다. 유럽에서 문득 떠올렸던 그 생각, 그리고 두 개의 올림픽이 교차하는 지점. 이 둘 위에 생각을 더한 끝에 논문의 ‘88 ’64를 더했고, 두 발전주의 국가의 수도에서 있었던 올림픽과 도시의 변모를 중심으로 문헌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일본국제교류기금에 신청을 한 결과 박사논문 저술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 것이 늦여름 도쿄의 날씨였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하네다(羽田)에 착륙한 9월의 어느 날도 그랬다. 기금으로부터 받을 지원이 충분했기에 그보다 한 달 앞서 도쿄로 향했더랬다. 처음으로 하는 외국생활이었기에, 아직은 혼자 하는 연구가 서툰 대학원생이었기에, 한 달 사이 서울행 편에 오를 일이 있을 것 같아서도 그렇게 했다. 큰 기대와 작은 불안을 가진 채 가재도구를 마련하고, 연구 일정을 계획하면서 몇 주가 흘렀고 겨울학기가 다가왔다.

 ▲  제미 종료 후, 동료들이 준 꽃과 롤링페이퍼

1년간의 지도를 맡아준 교수님을 포함, 도쿄를 드나들며 안면을 익힌 연구자들과 만났다. 연구 계획을 설명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지 조언을 구했다. 대학원생 신분이므로 제미(ゼミ)에 참가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이 많았고, 연구와 관련한 몇 개를 추천받았다. 한국에서 책으로 접하던 저자들이었으니 그들의 제미에 참가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설랬다. 제미가 끝나고 동료 대학원생들과 식사를 하며 한일 양국을 둘러싼 이슈나 대학원생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자료를 읽다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참석한 제미가 다섯 개였다. 이 제미들은 다른 젊은 연구자들과의 교류의 장이자 일본어 학습의 공간이었고, 내 글에 대한 귀중한 코멘트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시로카네다이(白金台)에 위치한 기숙사는 임대료도 싸고 주변 환경도 꽤 좋았지만, 캠퍼스와는 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두 번은 구니타치(国立)를 왕복해야 했다. 그러나 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도쿄를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면서 도시를 알아가고자 했기에 거리가 멀다는 것은 구경거리가 많다는 말이었다. 이틀에 한 번은 아사쿠사(浅草), 오모테산도(表参道), 시부야(渋谷), 다이칸야마(代官山), 에비스(恵比寿), 메구로(目黒), 시나가와(品川) 등지로 사람과 장소를 구경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여유가 있는 날엔 신주쿠(新宿), 이이다바시(飯田橋), 지유가오카(自由) 걸어서 가봤으니, 도쿄의 거리를 꽤나 열심히 들여다본 것이다.

무엇보다도 귀중한 체험은 ‘64올림픽과 ’20 올림픽이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어떻게 기억되고 있으며,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64올림픽 50주년을 맞은 작년 10월엔 박물관들을 포함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이에 대한 전시를 개최했다. ‘빠짐없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는 올림픽이 기억되는 ‘결’들을 찾고자 했다. 도로확장공사, 인종차별반대 집회, 신칸센 열차 사고 뉴스, 외국인 밴드 공연 포스터 등, 도쿄의 구석구석을 관통하며 순환하고 있던 ‘20 올림픽을 향해’ 라는 문구들을 접하는 것 또한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도쿄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쉬움이야 물론 없을 리 없다. 여행이라고는 간사이(関西)와 호쿠리쿠(北陸)에서 23일을 보낸 것이 다였다. 그보다 더 큰 것은 ‘읽고 싶은 것’을 다 읽지 못함에 있다. 64 올림픽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던 나는 컨텍스트에 관한 지식을 확장하고자 올림픽이 열렸던 시대 즉, ‘고도성장의 시대’에 관한 글로 이동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까?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제 분야에서 쏟아져 나온 관련 연구서들의 ‘폭’과 ‘깊이’에 이내 압도되었다. 몇 달 사이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그 중 몇 권뿐이었다. 언제 이것들을 읽고 도쿄를 ‘안다’ 할 수 있을까. 도쿄가 가깝다 생각했는데, 다시금 멀게만 느껴진다.

귀국 한 달 전부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책들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리고 곧 서울 집으로 향하는 배편에 실렸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도쿄를 떠날 준비와 동시에 도쿄와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무더웠던 한여름 석양을 뒤로한 채 서울로 향하던 비행기편이 내게는 도쿄를 향한 새로운 여정처럼 느껴졌다.

앎이란 달리 말해 멂에서 가까움으로 향하는 여정일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엔 가까움에서 멀어짐으로의 역행 또한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가까워짐과 멀어짐을 반복한 끝에 ‘앎’을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일 게다. 멀게만 느껴지던 도쿄와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졌고, 다시금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 그 먼 거리를 발견한 것이 도쿄에서 보낸 지난 일 년의 시간이었다. 이 여정의 끝에 도쿄에 대한 일부나마 ‘안다’ 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머지않아 논문을 마치고 그 어딘가에 기금 지원에 대한 감사의 글을 쓰면서는, 그럴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