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都滯留記 (교토 체류기)



한정선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

나는 2015년 연구년을 맞아 상반기 6개월을 교토에서 보냈다. 교토는 10년도 전에 박사과정생으로 도쿄에 장기 체류할 때 잠깐 방문한 이래 처음이다. 당시에는 일본인 역사학자 마츠오 다카요시를 만나기 위해 교토를 방문한 것으로 기억한다. 교토대의 마츠오 교수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전공자로서, 당시 나는 다이쇼 데모크라시기의 대표적 지식인 요시노 사쿠조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교토대의 인문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진행 중인 1920년대 일본 저널리즘 연구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해서 머물렀다. 주중에는 도서관, 서고, 그리고 연구실을 들락날락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도시탐방을 했다. 정서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일본의 古都, 교토를 한 줄로 요약하면?
전통과 현대의 공존 또는 전통의 현대적 재창조.
어쩌면 식상한 문구일지도 모르지만, 교토를 가장 잘 묘사하는 문구인 것 같다.
6개월간 교토에 체류하면서 탐방 한 곳 중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으로서의 교토를 잘 보여주는 곳, 세 곳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東福寺(동복사)를 들겠다. 東山(히가시야마) 구에 위치한 곳으로 관광지로 유명한 淸水寺(청수사)에서 그리 멀지 않다. 13세기 창건된 선종 계열의 사찰이다. 北谷(북곡), 中谷(중곡), 南谷(남곡)으로 불리는 골짜기가 있고, 이들 골짜기를 잇는 다리들로 구성된 규모가 매우 큰 절이다. 가을 단풍이 유명하다고 한다.

동복사는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일본 선종 계열 사찰에서 많이 나타나는 모래정원(枯山水, 카래산수이)을 볼 수 있다. 물이 없이 돌과 모래로 꾸민 정원으로 극도로 절제된 미를 보여주고 있다.

동복사의 정원은 근대 정원 작가로 유명한 시게모리 미래이(重森三玲, 1896-1975)가 제작한 것이다. 그는 일본 정원의 역사를 고증한 庭園史家(정원사가) 이면서 많은 모래정원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庭園作家(정원작가)이다. 동복사 경내의 方丈庭園(방장정원)은 시게모리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八相(팔상)의 庭園(정원)」으로 명명되어 있다. 동서남북으로 특색 있는 모래정원이 꾸며져 있다.

동쪽에는 구름모양의 모래 디자인 위에 원형의 돌이 북두칠성을 본떠서 배치되어 있다. 서쪽에는 철쭉과 모래를 격자모양으로 배치하였다. 남쪽에는 사선도를 거석으로 표현하고 소용돌이 모양으로 모래무늬를 만든 정원이 있다. 북쪽에는 초록색 이끼와 회색 돌을 격자무늬로 배치한 정원이 있다. 모래정원이라는 전통을 현대적 디자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정원이다. 지금의 감각으로도 전혀 진부함이 느껴지지 않는 미니멀리즘 속에서 장구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남쪽 정원을 바라보며 잠시 앉았다. 거석의 사선도와 소용돌이 모양의 팔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밑도 끝도 없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드는 느낌 속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동복사에 속한 곳으로 좀 떨어진 곳에 靈雲院(영운원)이 있다. 1390년 만들어진 곳으로 처음에는 不二庵(부이암)으로 명해진 곳이라고 한다. "생과 사는 둘이 아니다"라는 뜻의 不二.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재작년에 생사의 경계선을 홀연히 넘어버린 엄마생각에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다.

이 영운원에서도 시게모리가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모래정원을 볼 수 있다. 九山八海(구산팔해)의 정원과 臥雲(와운)의 정원이다. 구산팔해의 경우는 단순미가 돋보이며, 와운은 보다 아기자기한 짜임새가 느껴진다.

이 곳 영운원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교토와도 조우했다. 이 곳은 러일전쟁 중에 러시아포로 수용소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정원을 관람할 수 있는 건물 한쪽 구석에 약간의 설명과 함께 당시 러시아 포로가 만들었다는 러시아 전통악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전해주는 도시 모리아나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메두사 모양의 샹들리에 밑에서 은빛 비늘을 가진 무희들의 그림자가 헤엄을 치는, 수족관처럼 사면이 유리로 된 저택들이 있는," 화려한 도시 모리아나. 마르코 폴로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게 첫 여행이 아니라면, 여행자는 이미 이와 같은 도시들이 정반대의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시를 반 바퀴만 돌아봐도 충분합니다. 모리아나의 숨겨진 모습, 녹슨 양철, 거친 삼베, 못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널빤지, 검댕으로 시커먼 관, 깡통 더미 빛 바랜 낙서투성이의 막다른 골목...... 도시는 두께가 없고 그저 종이처럼 앞면과 뒷면만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 양면 여기저기에 형체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형체들은 서로에게서 떼어질 수도 서로를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러일전쟁과 관련하여 교토에 그려진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형체로는 무린암(無鄰庵)을 들 수 있다. 南禪寺(남선사)와 平安神宮(헤이안진구) 근처에 있다. 메이지 일본의 원로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1838-1922)의 별장으로, 池泉回遊式(지천회유식) 정원이 있다. 에도시대에 발달한 일본정원의 한 양식이라고 한다. 못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면서 감상하게 만든 정원이다. 東山借景(차경)하고 있다. 야마가타가 설계 및 감독을 한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고도 평가되는 야마가타가 정원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야마가타는 교양이 없다고 메이지천황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일본식 정원과 대비를 이루면서 있는 서양식 건물이 눈에 띈다. 이 건물에서 러일전쟁 개전 직전에 당시 정우회 총재 이토 히로부미, 총리 가츠라 타로,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 그리고 야마가타가 모여 러시아에 대한 정책을 논의한 일명 무린암회의가 열렸다.

세 번째로 꼽고 싶은 곳은 니와카() 건물. 교토 중심지인 산죠(三條)의 토미노코지(富小路通)에 있다. 토미노코지와 산죠가 만나는 지역은 오래된 여관, 분위기 있는 식당, 그리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니와카는 알고 보니 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보석점. 처음에는 1층에 자리 잡은 교토 디자인 하우스가 재미있어 보여 들어갔다. 물건들은 전통 생활소품을 현대적 감각과 디자인으로 재생산한 잡화들로 즐비하다. 물건들의 가격이 착하지는 않지만, 화날 정도는 아니다. 흔치 않은 감각적인 상품을 즐기면서 발길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세계가 전개된다. 값비싼 보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범상치 않은 실내구조를 느끼며 내려오면서 건물을 소개하는 설명서를 볼 수 있다. 역시. 2007년에 안도 타다오 (安藤忠雄, 1941-) 설계로 완성된 건물이었다. 전통적 일본식 가옥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밖으로 나가서 보니 안도의 건축에서 많이 나타나는 시멘트를 노출한 양식을 발견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속의 쿠빌라이 칸은 마르코 폴로의 도시들이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교토 또한 "영광스런 도시 클라리체"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도시는 새로운 번영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스스로를 낯설고 모순된 존재로, 뭔가를 강탈한 자가 된 듯 느낍니다.

그래서 뭔지 모를 필요에 들어맞을 것 같아서 그대로 남겨두었던, 최초로 번영했던 시기의 파편들이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되고 이제는 유리 종 속에 안전하게 보호되어 유리 상자에 담겨 공단 쿠션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들이 무엇엔가 아직 쓸모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들을 통해 이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도시를 재구성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