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일본 거장전(3K영화제:7/1~8/10)>에 즈음하여, 일본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고바야시 마사키, 기노시타 게이스케, 기무라 다케오 3인의 감독이 제작한 영화의 매력과 영화 관람 포인트를 3인의 대표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정국(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영화감독)

 

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1958)

 

 

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에게 3번째 키네마 준보상을 수상하게 해준 <나라야마 부시코>는 후카자와 시지로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이전 <카르멘 고향에 돌아가다>(1951)<스물 네 개의 눈동자>(1954)의 경쾌함과 감상적인 정서와는 다소 다르게 깊은 산골을 배경으로 고대 시대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부족한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나이 든 노인을 산속에 버린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나라야마 부시코>1983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리메이크(일종의 재각색)하여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일한 원작으로 바탕으로 한 영화가 한 편은 일본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다른 작품은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서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적어도 이마무라 쇼헤이의 리메이크작 <나라야마 부시코>를 처음 봤을 때만해도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원초적인 속성을 그토록 적나라하고 리얼하게 그린 작품을 그 당시까지만 해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유사한 소재와 스토리를 가진 우리 한국의 김기영 감독의 <고려장>(1964)을 봤을 때 다시 한 번 놀랐다. <하녀>를 만든 그 대단한 작가주의 감독이 어떻게 일본 원작과 거의 유사한 스토리를 가져와 (비록 다소 다르게 해석되긴 했지만) 연극적인 세트로 그토록 어색하게 연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와서 일본식 기로속과 유사한 풍습인 고려장은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조작한 풍습이라는 말도 있지만, 하여간 김기영 감독의 <고려장><나라야마 부시코>와 내용의 유사성은 차치하고, 조악한 연극적인 세트와 어색한 대사가 무척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나랴아마 부시코>란 영화를 뒤늦게 접하고 <고려장>이 왜 연극식 세트를 이용하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실 게이스케 영화 역시 거의 대부분이 가부키풍의 세트로 만들어진 데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가부키 형식 속에 들어간 듯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연극적이고 인위적이라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리얼하고 세련된 영화와 너무도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게이스케 영화는 마치 비디오 영상으로 잘 찍힌 가부키 한 편을 보고 난 기분이 들게 한다. 아예 도입부 시작부터 가부키 배우가 막을 열고, 영화 전반을 우리 판소리처럼 가부키 배우의 노래가 내용의 해설자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현대의 한 기차역에서 끝난다. 김기영 감독의 <고려장> 역시 현대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시작해 과거를 들어가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게이스케 영화를 보면서 2000년에 만들어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생각났다. 현대의 젊은이들이 판소리 무대극을 보는 데서 과거의 춘향전이 영화적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두 작품 공히 새로운 접근은 좋지만, 관객을 동일화 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스케 영화가 당시에 일본 내 최고의 영화로 평가 받았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지금은 장애가 될 그 형식이 당시로서는 무척 신선하게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영화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죽음의 미학,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오린 할머니의 의식적인 태도가 2차 대전 패전 직후 잃어버린 일본인들의 미덕(우리 한국인에게는 다소 불편한)이 잘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근대문명으로 다가서기 훨씬 이전, 보다 원시적인 도덕관과 동물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본성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인류학적인 가치가 잘 녹아든 작품으로 보인다. 문득 아득히 먼 먼 옛날 인류 조상들의 그런 삶이 어쩌면 현재에도 조금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