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임재철(서울시네마테크 대표, 영화평론가)
1957년에 개봉된 <막말 태양전>은 지금도 가와시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뒤틀린 코미디 영화가 흥행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의외로 비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역으로 보면 당시 일본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얼마나 잘 기능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지는 증거가 될만합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양립시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영화의 배경은 1862년으로 메이지 유신 5년전으로 말하자면 에도막부 말기의 혼란기가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장소는 에도 시나가와의 기생집입니다. 즉 유곽이죠. 영화속에서 주역을 맡는 것은 고전 라쿠고(落語)에서 빌어온 인물인 사헤이지 그리고 근황파(勤皇波)의 지사로 유명한 다카스키 신사쿠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무전취식이 전문인 건달 사헤이지는 물론 가공의 인물이지만 다카스키는 역사상의 실재 인물입니다. 다카스키는 특히 당시 ‘태양족 영화’의 최고의 스타였던 이시하라 유지로가 맡았습니다. 방약무인함과 무책임한 태도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태양족’ 젊은이가 막부말기의 혼란기에 살았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 것인가를 묘사하는 것이 애초에 가와시마의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종종 시대극으로 만들어진 태양족 영화라고 불리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술 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사헤이지는 막무가내로 사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사에 빈틈없는 구석이 있는 사내입니다. 우리로 치면 중인계급에 해당하는 초닌(町人) 출신다운 야무진 데가 있는 사내입니다. 동료들을 데리고 술집 사가미야에 들어온 그는 게이샤를 불러서는 음주가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룻밤을 신나게 보냅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함께 온 동료들을 내보낸 다음 혼자만 남습니다. 술집의 점원인 기스케가 계산을 해달라고 하자 그는 돈이 한푼도 없다고 말합니다. 가슴병을 앓고 있는 그는 애초부터 해변가여서 공기도 좋은 이 집에 들러붙을 생각으로 무전취식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스토리에서 볼 수 있듯이, <막말 태양전>은 한정된 장소를 배경으로 그곳을 머물거나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인물들을 들여다보는 영화, 다른 말로 하면 <그랜드 호텔>(그레타 가르보가 주연을 맡은 1932년작으로 영화에 있어서 군상 드라마를 유행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식의 구성을 가진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 보여주는 독특한 개성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얽혀 있는 관계들을 관찰하는 것이 이 영화의 으뜸가는 재미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한편으로 영화는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공간과 인물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보여주려고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막말 태양전>은 다분히 야마나카 사다오의 <인정지풍선>을 떠올리게도 하는 영화입니다.
한편으로 라쿠고의 고전적인 유머를 현대적으로 도입한 영화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원래 라쿠고란 한 사람의 만담가가 사람들을 상대로 세상을 풍자하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여흥 양식인데요, <막말 태양전>은 그 자체로 영화로 풀어낸 라쿠고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막말 태양전>은 전통적인 연희 양식을 영화라는 현대적인 매체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꽤 많은 중요한 일본 영화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