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복환모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다매체영상학과 교수)
주인공 쥰(吉永小百合)은 중학교 3학년인 여학생으로, 아빠는 주물공장의 용광로 직공이며, 엄마는 비닐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남동생 다카유키는 초등학교 5학년으로 무척 명랑한 소년이다. 아빠의 공장이 대기업에 매수당하자 나이든 노동자는 모두 해고당하게 된다.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자 쥰은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다카유키에게는 재일조선인 친구 상키치가 있다. 상키치의 아빠는 재일조선인이며, 엄마는 일본인이다. 상키치 가족은 니이가타에서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인을 차별하는 아빠와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쥰과 다카유키는 상키치 가족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날, 상키치 가족은 니이가타 항구에서 김일성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북송선에 몸을 싣는다.
이 영화에서 쥰은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밝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희망의 소녀로 묘사되고 있다. 쥰을 연기한 요시나가 사유리는 <큐폴라가 있는 거리>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으며,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얻게 된 청순하고 명랑하며 총명한 소녀로서의 이미지로 1960년대 일본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이 영화가 제작된 당시의 일본 사회는 빈부의 격차가 심하였으며, 안보투쟁 등으로 연일 데모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요시나가 사유리가 <큐폴라가 있는 거리>에서 자아낸 신선한 이미지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얀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녀의 발랄한 모습, 절망에 쌓인 가정에서도 잃지 않는 해맑은 미소,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우정 등은 당시 일본사회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우라야마 기리로 감독의 <큐폴라가 있는 거리>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にあんちゃん、작은 오빠,1959>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매우 흥미 있게 감상할 수가 있다. <작은오빠>는 일본의 탄광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재일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형제간의 어려움 속에서도 우애를 잃지 않고, 밝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소년소녀의 모습은 <큐폴라가 있는 거리>의 쥰과 상키치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