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복환모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다매체영상학과 교수)

 

일본은 영화강대국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영화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의 연간 제작편수는 500편을 넘었으며, 당시의 영화관객수는 연간 11억명을 넘었다. 최근에도 연간 25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일본이 영화 강대국이라는 말은 이러한 외형적인 숫자에서만 온 것은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면에서도 일찍부터 세계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특히, 1950년대에는 유수한 국제영화제에 많은 작품이 입상하여 일본영화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1년에는 구로사와아키라(黒沢明)감독의 <라쇼몽, 羅生門>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이어서 미조구치켄지(溝口健二) 감독의 <오하루의 일생, 西鶴一代女>(1952), <우게츠 이야기, 雨月物語>(1952), <산쇼다유, 山椒大夫>(1954)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계속 입상하였다. 기누가사테이노스케(衣笠貞之助) 감독의 <지옥문, 地獄門>(1954)은 칸느영화제에 출품되어 그랑프리를 획득했다. 국제영화제의 입상은 1950년대 후반에도 계속되어 이마이타다시(今井正) 감독은 <순애보, 純愛物語>(1957)를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하여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일본영화가 유럽의 3대 국제영화제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끌며 국내외적으로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일본영화는 긴 불황을 겪게되었다. 메이저영화사가 도산하고 제작활동은 위축되었다. 많은 감독들이 메이저를 나와 독립프로덕션을 차리고, 실험성 있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은 오오시마나기사(大島渚)감독과 함께 이러한 시대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독립프로덕션을 설립하여, 메이저영화사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이며 예술적인 저예산 인디펜던트영화를 만들었다. 열악한 영화제작 환경이 오히려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의 개성적인 영화제작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은 그의 초기 작품부터 대단히 특징적이고 일관된 작품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첫째로,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하류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소외된 그룹이라는 점이다. 범죄자, 빈농출신의 창녀, 차별받는 재일한국인, 천민 등의 생활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고 있다.
둘째로, 이러한 하류인간을 다루지만, 그들의 생활자체는 무척 악착스럽다. 처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대단한 용기와 인내와 삶에 대한 집착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의 영화를 보면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가 있다.
셋째로, 하류인간들의 군상을 그리는데 있어서 일관된 표현양식으로 완벽한 리얼리즘을 들 수가 있다. 이태리안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현장중심의  로케이션, 사실적인 음향, 들고 찍기 등에 의한 현장성의 강조,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는 등장인물의 자연스런 연기와 함께 철저한 리얼리즘을 추구하고 있다.
넷째로, 모든 작품에서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가 있다. 하류인간들의 삶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을 통해, 감독은 그 속에서 인간의 순수를 그려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라야마부시코(楢山節考)>는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하겠다. 후카사와시치로(深沢七郎)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한 것으로, 이미 1958년 기노시타케이스케(木下恵介)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다.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은 먹을 것이 없어 노인을 산에 버린다는 기로전설(棄老傳說)인 <나라야마부시코>에, 후카사와의 농촌의 성을 묘사한 에로틱한 소설<동북의 신무들(東北の神武たち)>을 합쳐 영화<나라야마부시코>를 만들었다.

 

산으로 둘러쌓여 철저하게 고립된 가난한 마을의 생활풍속이 독특하다. 가난하기 때문에 식구(食口)를 늘리지 않기 위해 장남만이 결혼을 할 수가 있으며, 결혼하지 못한 남성은 수간 등을 통해 욕구를 채운다. 70이 된 노인은 젊은이를 위해 산에 버려지며, 오로지 먹기 위해 살아가는 이 마을사람들은 곡물을 훔치는 자가 있으면 그 가족 전부를 생매장시켜 버린다. 먹는 것과 배출을 위한 투쟁, 그리고 종족번식, 이와 같은 독특한 생활 풍속을 갖고 있는 가난한 마을사람들을 동물과 다름없는 자연생태계의 일부분으로 그리고 있다.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은 이러한 생태계의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뱀을 비롯한 동물, 진기한 곤충 29종을 기르고, 쌀, 콩, 감자 등 21종의 곡물을 재배하였다. 뱀 등의 교미 현장은 인간의 종족번식의 본능과 교차되고, 갖가지 곡물류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최고의 가치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는 사계의 변화와 함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산속의 마을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으며, 극중 현실감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영화 속의 마을을 로케이션하기위해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은 헬리콥터를 타고 전 일본열도를 뒤졌으며, 포기 직전에 간신히 찾았다고 한다.

 

촬영 3년 만에 완성된 <나라야마부시코>는 1983년 칸느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일본영화 최고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의 영예를 되살렸다. 파티를 싫어한다는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은 수상식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주연배우인 사카모토 스미코(노인역인 오린 役)와 프로듀서인 구사카베코로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은 1997년에 <우나기>로 또 한번의 칸느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제에서 두 번이나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사람은 이마무라쇼헤이 감독이 네 번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