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성욱 (문화학교 서울 대표, 영화평론가)

 

영화 '도쿄방랑자'
  ▲ 영화 '도쿄방랑자'
일본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감독들은 아마도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와 같은 거장들일 것이다. 이들의 작품은 그것의 영향력을 세계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에른스트 루비치,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등의 1930-40년대 할리우드 거장들처럼 스튜디오(촬영소) 시스템이 만들어낸 천재들에 가깝다. 영화를 찍는 것이 의식적인 행동이 되는 시기, 가령 2차대전 이후의 시기에 작가들이 처한 조건은 이와 사뭇 다르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하던 시기인 1950년대에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은 영화를 만드는 다양한 조건들을 불가피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빌리 와일더가 말한 것처럼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제작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딜deal을 하느라 무수한 시간을 보내며 영화와의 관계를 새롭게 고민해야만 했고, 그런 의미에서 고전적인 감독들과 다른 현대적인 작가라 불릴만하다. 일본의 경우에도 1950년대 말에 촬영소 시스템에서 영화를 시작했지만, 고전기 일본영화의 거장들과 다른 조건하에서 새로운 일본영화를 만들어낸 일군의 감독들이 있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그러한 사람이다. 오시마는 고전적인 일본영화의 상식을 무너뜨리며 지적이고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전후 일본의 변화를 영화에 담아낸 최초의 감독이었고, 그를 선두로 1960년대 일본 영화의 새로운 물결(뉴웨이브)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오시마 나기사 뿐만 아니라 또 한 명의 특별한 감독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 1960년대 일본 뉴웨이브가 세계에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 그늘 아래서 한결같이 동시상영용 저예산 B급 영화를 만들어내며 관객의 눈에 강렬한 낙인을 새긴 스타일의 진정한 파괴자. 그가 바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다.

 

스즈키 세이준은 종종 자신이 오즈나 나루세처럼 예술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 아니라 그저 영화적 재미를 추구한, 오락영화를 만든 감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1960년대 일본영화에는 두 종류의 영화, 즉 유명배우에 좋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A급 영화와 제한적인 예산, 저급한 배우, 졸속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에 근거한 어설픈 B급 영화가 있었다. 세이준은 1967년 닛카츠 영화사에서 해고되기 전까지 근 10여 년 동안 그 곳에서 다량의 B급 영화를 만들었다. 일본영화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던 1960년대에 일주일에 두 편씩 상영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20일에서 25일 정도의 제작기간을 들여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 정해진 장르와 진부한 소재들. 설상가상으로 있으나마나한 저예산에 미리 정해진 안이한 캐스팅. 이런 엄혹한 환경에서 스즈키 세이준은 무언가 색다른 것, 독특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려 했다. 그의 영화가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보자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시각효과로 가득한 기괴한 영화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령, 액션 스릴러에서 시작해 느닷없이 전개되는 노래와 춤(<탐정사무소 23, 죽어라 악당들>), 노란색, 붉은색, 흰색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나이트 클럽의 배경(<도쿄 방랑자>), 마주보고 말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전혀 다른 장소에 등장하고, 다른 장소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인접해지는 기묘한 시네마스코프의 화면 공간(<야수의 청춘>, <육체의 문>, ‘다이쇼 낭만 삼부작’ 등), 끊임없이 화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도쿄 방랑자>, <지고이네르바이젠>), 수직과 수평, 나선형의 기하학적인 세트(<도쿄 방랑자>, <살인의 낙인>), 일본화를 연상케 하는 화면 구도(<유메지>, <아지랑이 좌>)는 우리의 눈을 교란시킨다.

 

그가 1966년 만든 <토쿄 방랑자 東京流れ者>(1966)는 이러한 스즈키 세이준의 독특한 미학이 본격적으로 표현된 영화다. 가요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 액션영화인 <도쿄 방랑자>로 세이준 감독은 주제곡인 ‘도쿄 방랑자’가 극중에서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을지를 도전해봤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일본 개봉당시에는 진부하고 안이한 액션영화로 저평가 받았지만 이후 색체 사용과 황당무계한 액션장면으로 영화의 틀을 넘어 ‘팝 컬처’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도쿄 방랑자>는 당시 닛카츠가 자랑으로 여긴 황당무계한 무국적 액션영화와 가요영화를 그 극한의 지점까지 끌고 간 영화로 모던하고 키치적인 양식미가 가득 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도쿄, 니이카타, 큐수를 유량하며 에피소드를 옴니버스식으로 묶고, 주인공이 노래하는 주제가가 매번 장면마다 나오며, 의리와 배신을 둘러싼 데츠야의 고독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이준은 즐겨 야쿠자 장르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야쿠자들이 삶과 죽음사이를 유랑하는 인물들이라 말한다. 이들은 평범한 인물들보다는 훨씬 극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존재의 불투명성과 견고한 세계. 하지만 세이준은 구조로서의 세계에 거주하는 인간의 항변과 저항을 또한 영화 안에 담아낸다. 가령, <도쿄 방랑자>의 주된 영화적 혁신은 영화적 흐름을 단 번에 뒤바꿔버리는 급격한 단절의 미학에 있다. 이러한 단절은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변화, 컬러의 갑작스런 개입으로 인한 세트의 변화, 또는 화면 바깥에서 갑자기 침입해 들어오는 노래와 소리에 의한 변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사실 고전적인 영화의 ‘규범’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과격한 일탈에 가깝다. 세이준은 이러한 일탈이 영화적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자신의 일관된 영화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작업에 대해 “시나리오가 주어지면 나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고려한다. 먼저 관객들이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동안 지루해할 영화를 내가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면, 나 자신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어떻게 관객들이 영화에 흥미를 갖고 호감을 갖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두 번째로 관객을 확 끌어당기는 지점을 생각한다. 그런 갈고리는 결코 반복해서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나는 늘 관객들을 낚아채는 새로운 갈고리를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독특함은 세이준의 아트 디렉터였던 키무라 다케오와의 협력 작업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키무라는 닛카츠의 무국적 액션은 보다 허구적인 세트에서 보다 영화적인 사실감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닛카츠로부터 경계의 대상이었던 키무라는 매번 만드는 영화가 마치 늘 마지막 영화인양 작업했다. 그는 “만약 이 영화가 내 마지막 영화라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 모든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키무라와 세이준은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배경이나 의상, 원색의 색체, 뒤틀린 공간의 접합, 깊이보다는 표층을 강조한 <도쿄 방랑자>는 기묘한 비현실감이 영화의 전체를 압도하는 특별한 영화다. 특히 조명의 사용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쿄 방랑자>에서 사용되고 있는 붉은색(조명)은 그 자체 어떤 상징적인 의미(예를 들어, 죽음)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조명의 ’색‘이라기보다는 조명의 ‘변화’이다. 조명이 바뀌는 것은 형상 그 자체에는 어떤 영양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형상에 개입하면서 갑작스런 단절을 만들어내며 과잉, 혹은 의미의 흐릿함, 무정형성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도, 상징하는 것도 아닌 세계 그 자체의 구조적 변화를, 달리 말하자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퍼스펙티브)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도쿄 방랑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갑작스런 권총의 움직임은 일순간에 지금까지의 흐름과 결별하며 세계의 색을 또한 바꿔버린다. 인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세계의 급격한 변모는 인물들이 세계에 농락된 존재임을, 그래서 세계에 저항하는 싸움을 전개해야 함을 일깨운다. 이는 또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는 1967년, 기존의 영화들과 너무나 급진적인 단절을 이룬 <살인의 낙인>을 완성하고 닛카츠로부터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영화를 만든다’라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영화가 허구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영상과 음악의 추상화를 극한까지 끌고 간 이 특별한 감독은 다른 예술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실에서 고통을 오랫동안 감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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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일본영화이야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본 센터 일본필름컬렉션 소장 영화의 상영회를 통해 만나뵙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바랍니다.